[한마당-김영석] 북한판 신사유람단 기사의 사진
1881년 고종은 30, 40대 관리로 구성된 시찰단을 일본에 파견키로 했다. 일본의 근대 문물을 배우자는 취지였다. 개화 반대 목소리가 높았던 시기였기에 시찰단 파견은 극비리에 진행됐다. 38명으로 구성된 시찰단을 5개 반으로 나눴다. 부산으로 내려갈 땐 암행어사 자격으로 움직였다. 그해 4월 10일 부산을 출발한 시찰단은 같은 달 28일 도쿄에 도착했다.

시찰단은 공무가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 공공기관에 머물지 않고 민가에서 생활했다. 조사 대상은 일본 정부 부처와 육군, 세관, 포병공장, 산업시설 등이었다. 약 2개월반 동안의 조사를 마치고 돌아와 보고서를 제출했다. 보고서는 국내에 개화 여론을 확대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예전엔 이들을 신사유람단(紳士遊覽團)이라고 했으나, 한국사 용어 수정안에 따라 조사시찰단(朝士視察團)으로도 불리고 있다.

그로부터 130여년이 흐른 지금 북한의 행보에서 구한말 신사유람단이 떠오른다. 지난 3월 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중국 방문 이후부터다. 이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동행하지 않은 유일한 일정이 있었다. 중관춘(中關村) 방문이다. 1988년 중국 최초의 첨단기술개발구로 지정된 곳으로,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린다. 부인 이설주와 함께 가상현실(VR) 헤드셋을 착용한 모습은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지난달 14일부턴 북한 노동당 친선 참관단이 11일 동안 중국에 머물며 경제 현장을 집중적으로 둘러봤다. 뒤이어 청년 외교단 대표 15명이 충칭을 방문했다. 북한의 중국식 개혁·개방 모델 배우기가 한창인 셈이다.

김 위원장은 세기의 북·미 핵 담판을 앞두고 있다. 비핵화 카드로 체제 안전을 보장받게 되면 경제 개발에 올인한다는 구상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의 발언에선 개혁·개방의 단어를 찾아볼 수 없다. 신속한 시장 자유화를 통한 빅뱅식 이행이 아니라 공산당 주도의 점진적 방식을 택하겠다는 속내가 엿보인다. 속도감 있는 개혁·개방은 자칫 체제 붕괴까지 초래할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개혁·개방은 비핵화 프로세스와 함께 추진돼야 북한 주민들을 빠른 시일 내 번영의 길로 이끌 수 있다. 삶이 지금보다 나아진다면 북한 주민들이 김정은 체제를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란다.

김영석 논설위원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