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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하주원] 일상을 희생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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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전쟁에서 살아남았어도 소중한 이를 잃거나 죽음에 대한 위협을 겪은 뒤 생긴 공포와 불안감을 수십 년간 겪으며 나이 드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기 때문이다. 심리적 외상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세상을 안전하지 않고 위협적인 곳으로 인식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누리는 평화에 대해 막상 본인들은 한 발짝 떨어진 듯한 기분을 갖고 있다. 전쟁 후의 심리적 외상이 오래된 이야기 같지만 오래 지나도 그날을 오늘처럼 매일 다시 경험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심리적 충격 직후에는 놀라고 가슴 두근거리고 악몽을 꾸는 것처럼 누구나 이해할 만한 반응이 대부분이라서 그 고통을 설명하기가 쉽다. 하지만 긴장과 무기력이 오래될 경우 정신적 트라우마와 관련 있는지 본인도 깨닫지 못해 남에게 설명하고 치유하기 더 어렵다. 심리적 외상의 흔적은 숨어 있다가 몸과 마음이 약해지면 드러나기도 한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분은 잘 지내다가 20년이 지난 뒤 귀에서 적군의 총소리가 들린다. 환청이라고 진단받기도 했지만 나는 숨어 있던 정신적 외상에 대한 반응이라고 생각했다. 영화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에서처럼 선명한 플래시백이 나타나는 것만 외상의 재경험이 아니다. 악몽을 잊기 위해 매일 술을 마시거나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당시의 질서로 모든 것을 판단해 사람들을 상하 관계, 내 편이 아니면 적, 이렇게 극단적으로 나누는 양식까지 영향을 준다.

몇 년 전 방문했던 미국 워싱턴의 보훈병원은 심리적 외상을 치유하는 센터가 따로 있었고 한국전쟁에 참전한 분들도 상담을 받고 있었다. 모든 것이 미국과 비교하면 끝이 없지만 나라를 위해 일하다 얻은 정신적 외상을 치료받을 수 있어서 부러웠다. 목숨을 바치거나 몸이 불편하신 분들만 유공자가 아니다. 심리적 외상으로 우리가 누리는 당연한 일상을 불안 속에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도 희생자다. 평화에 대한 새로운 희망은 우리에게 축복이지만 그분들의 빼앗긴 일상에 대한 예우가 희미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주원(의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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