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장이 직접 큐레이터로 나선 까닭은… ‘사진에 저항하다’展 기사의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바르토메우 마리 관장이 지난달 31일 ‘일일 큐레이터’가 돼 관객들에게 ‘아크람 자타리’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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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삼청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지하 1층. 레바논 사진작가 아크람 자타리(52·사진)의 한국 첫 개인전 ‘아크람 자타리: 사진에 저항하다’ 전시장 입구가 갑자기 북적였다. 순식간에 모여든 40명가량의 관람객은 이내 반원을 그리듯 둘러서서 큐레이터의 설명을 듣기 시작했다.

관람객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이는 여느 큐레이터가 아니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수장 바르토메우 마리(52)였다. 관장이 직접 전시 기획 의도와 출품작을 소개하는 행사에 나선 것이다.

“아크람 자타리는 사진을 매개로 역사와 사회에 관한 스토리텔링을 하는 작가라고 할 수 있지요.”

리허설까지 했다는데도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2015년 말 관장으로 취임한 그가 큐레이터 자격으로 관객과 만나는 건 처음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출범 이후에도 처음 있는 일인 것 같다고 관계자는 전했다.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마리는 스페인 바르셀로나현대미술관장 출신이다. 전 직장에서 자타리의 개인전을 기획했지만 한국으로 짐을 싸서 오는 바람에 성사되는 걸 보지 못했다. 그가 떠난 뒤 지난해 바르셀로나현대미술관에서 선보인 이 전시는 독일 K21현대미술관을 거쳐 이번에 한국에 온 것이다. 전시 성사에 역할이 컸던 만큼 애정이 깊어 보인다.

자타리는 전문가가 찍은 스튜디오 사진이나 가족 앨범 등 누군가 찍은 사진들을 수집해 이를 창의적으로 재활용한다. 전시장 입구 벽면에는 사진을 수집한 지역을 지도로 표시해 놓았다. 마리 관장은 지도를 가리키며 “주로 1930∼40년대 사진을 많이 모았는데, 중동의 식민지 역사와 연결돼 있다”고 설명했다. 자타리의 조국 레바논만 해도 1944년에야 프랑스의 지배에서 완전히 독립했다.

자타리는 수집한 사진들을 본인 의도에 맞게 선택해 재촬영하거나 우연한 결과물을 차용하기도 한다. 녹아내린 네거티브(음화) 필름, 붙어 버린 유리판, 인화지의 구겨진 자국까지 작품으로 끌어온다. 그런 작업을 통해 식민지 시절의 고단함, 전쟁의 불안정함,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대치한 일상 등 전혀 다른 문맥을 만들어낸다.

예컨대, 프랑스 군인과 레바논 소녀의 이미지가 포개진 사진 작품이 있다. 원래는 각각을 찍은 유리 건판이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보관이 잘못돼 유리 건판 두 개가 엉겨 붙었고, 결과적으로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함께 있는 듯한 장면이 연출됐다. 자타리는 이를 찍어서 프랑스 식민지였던 레바논인들의 역사적 기억과 슬픔을 표현한다.

자타리는 이런 일련의 작업을 유물을 발굴하는 고고학자의 행위에 비유한다. 수집한 어느 스포츠 선수의 사진이 방금 땅속에서 나온 유물인 것처럼 그 위에 흙을 뿌려 놓고 ‘고고학’이라고 이름 붙인 설치 작품도 있다.

마리 관장은 “스페인에서 근무할 때는 전시 해설도 많이 했다”며 “역시 관람객과 직접 만나 소통하니 전에는 몰랐던 작품의 새로운 의미가 발견돼 기쁘다”고 말했다. 마리 관장은 취임 당시 자신의 역할을 콘텐츠에 집중하는 ‘큐레이터 관장’으로 정의한 바 있다. 전시는 8월 19일까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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