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이명희] 김동연과 장하성 기사의 사진
얼마 전 사석에서 만난 한 장관은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꽃놀이패를 쥐고 있다고 했다.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둘러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의 승부에서 국민들과 대다수 언론이 지지하고 있어 아쉬울 게 없다는 얘기다. 그가 꺼내든 최저임금 인상 속도조절론이 받아들여지면 금상첨화이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김동연 패싱’ 논란을 불식시키고 ‘국민만 바라보고 간다’는 이미지 메이킹은 확실히 했다는 의미로 들렸다. 혹자는 노무현정부 시절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경제 공부 좀 하고 오라”면서 청와대 386 참모들과 부딪혔던 일을 떠올리기도 한다.

김 부총리가 작심하고 최저임금 인상 속도조절론을 꺼내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소득주도 성장론에 밀려 악화되고 있는 고용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되겠다는 위기감의 발로인 것 같다. 겉으로는 김 부총리의 판정패 분위기로 가는 듯 보인다. 소득 하위 20%의 소득이 1년 전보다 8% 줄었다는 통계에 “매우 아픈 지점”이라고 했던 문재인 대통령마저 “소득주도 성장,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라고 장 실장 편을 들어줬으니 말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최저임금 인상의 직격탄을 맞은 실업자나 자영업자를 쏙 빼고 일하고 있는 근로자만을 추린 반쪽짜리 통계였다. 원고에도 없던 내용을 대통령이 발언했다고 하니 누군가 소득주도 성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귀띔한 듯하다. 누가 대통령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고 대통령의 눈과 귀를 막고 있는가.

잘 알려진 대로 김 부총리는 흙수저 출신이다. 장 실장은 만석꾼 부호 집안의 금수저 출신이다. 1990년부터 고려대 교수로 재직하며 96년 참여연대에서 경제민주화위원회를 만들어 소액주주운동을 했다. 90년대 후반 삼성전자 주총장에서 대형 차트를 펼쳐 보이며 경영진을 매섭게 질책하던 그의 모습이 선명하다.

자라온 환경이 정반대인 두 사람이 대기업을 보는 시각은 아이러니하다. 장 실장은 저서 ‘왜 분노해야 하는가’에서 한국의 불평등은 재산보다 소득 불평등이 원인이며 소득 불평등의 원인은 임금과 고용의 불평등 때문이라고 했다. 이렇게 만든 것이 대기업이며 그래서 소득 재분배(복지) 이전에 원천적 분배의 불평등을 바로잡는 게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참여정부 때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변양균씨와 그를 도와 ‘2030 복지국가 비전’을 만들었던 김 부총리는 단기적인 케인스식 수요 확대보다 중장기적인 슘페터식 공급 혁신을 앞세운다. 기업의 기를 살려야 하고 규제혁파 등 구조개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 부총리는 1년 전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취임사에서 “우리가 언제 한 번 실직의 공포를 느껴본 적 있습니까? 장사하는 분들의 어려움이나 직원들 월급 줄 것을 걱정하는 기업인의 애로를 경험해본 적이 있습니까? 저부터 반성합니다…. ‘나보다 우리가 낫다’는 말처럼 다수 국민은 소수 엘리트보다 옳게 판단합니다”라고 했다. 100억원대 자산가인 책상물림 실장보다 현장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대통령에게 직언하는 부총리가 더 진정성이 있어 보인다. 대통령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 말로만 경제 컨트롤타워라고 할 게 아니라 김 부총리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

사족 하나. 요즘 하나금융지주와 KB금융지주 수장을 겨냥한 검찰 채용비리 수사와 차기 포스코 회장 인선을 둘러싸고 장 실장 이름이 또 오르내리는 것을 보니 박근혜정부 시절 ‘왕실장’으로 불렸던 김기춘 비서실장이 어른거린다. 금융 요직은 이미 최종구 금융위원장을 비롯 은성수 수출입은행장,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등 장 실장과 학연 등으로 얽힌 ‘장하성 사단’이 접수했다. 최근에도 윤석헌 금융감독원장과 김태오 DGB금융지주 회장이 이 라인에 합류했다. 이 정부 인사들은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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