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에 생명력을] 예수만이 영생을 얻는 유일한 길임을 분명하게 고백해야

<4> 오직 예수 부활만 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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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루터가 예수 부활의 복음을 전한 독일 비텐베르크 시립(市立) 성모 마리아교회 설교강단. 이 교회는 1535년 개신교 목사의 성직 수여식이 최초로 거행된 곳으로 종교개혁의 모태교회로 불린다. 국민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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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한국교회 문제점을 윤리적 실천의 부재라고 주장한다. 혹자는 거룩과 세속을 구별하는 잘못된 이원론을 말한다. 타당하고 그럴듯하다. 하지만 그것은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본질은 교회가 생명의 예수복음을 똑바로 전하지 않는 데 있다.

개혁주의생명신학은 중심되신 그리스도, 주님의 인격과 사역에 초점을 둔다.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보자가 되시며 우리의 구원자 되신다는 뜻이다. 즉 예수만이 영생을 얻는 유일한 길임을 분명하게 고백한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의 종교개혁

중세교회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예수 그리스도 외에 여러 중보자를 인정하고 말았다. 그래서 성인의 능력을 믿고 교회의 성례를 남용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화목케 한다는 절대 진리를 흐렸다. 자연히 그리스도는 성도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이런 상황에서 마르틴 루터는 “교회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다”라면서 주님이 차지하셔야 할 자리를 회복시켰다. 루터는 1521년 종려주일 설교에서 “회중은 설교자가 오직 그리스도만을 설교하고 있는지에 따라 그가 참된 설교자인지 아닌지 평가한다”고 말했다. 주현절 설교에선 “성경은 그리스도만을 담고 있다. 그리스도를 모르고 성경을 소유하는 것은 더 이상 성경을 소유한 것이 아니다”고 선언했다. 그의 설교에는 언제나 예수가 핵심에 있었던 것이다.

예수만이 구원의 유일한 길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의 유일한 길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리스도 외에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지 않으셨다.(행 4:12) 철학 종교 과학 문화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오직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종교혼합주의와 종교다원주의는 많이 잘못된 사상이다.

하나님의 구원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나타났다. 모든 사람은 범죄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 우리의 마음은 어두워져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지 않았다. 도리어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우상으로 바꾸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선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내어 주셨다. 예수께서는 하늘의 영광된 보좌를 비워 두시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구원 사역을 다 이루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사하셨으며, 부활을 통해 우리를 의롭게 하셨다.(롬 4:25) 이것이 십자가와 부활복음의 핵심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복음을 전하고 믿을 때, 영혼이 살아나고 교회의 영적 생명력이 회복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세의 오류를 반복하는 현대교회

중세교회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마리아와 성인, 사제들을 추가했다. 예수님 외에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다른 길이 있다고 주장했다. 오늘날에도 유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오직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상대적이고 다원적인 사상 아래 구원의 길을 개방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는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말씀하셨다.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리스도 외에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시지 않았다. 이것이 진리다.

그렇기 때문에 목회자는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만 전해야 한다. 고린도전서 2장 2절은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무슨 말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성경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강단 위기는 흐릿한 부활복음 때문

앞서 살펴봤듯이 한국교회 강단의 위기는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제대로 선포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십자가와 부활은 고난주간과 부활절 절기 설교로 끝낸다. 설교한다고 해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신 것을 똑바로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예수께서 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는지, 왜 십자가가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인지를 전하지도 않고 믿지도 않는다. 그저 헌신적인 한 인간의 죽음으로, 인간의 상식으로 볼 때 본받을 만한 존재인 것처럼 십자가 복음을 약화시키고 있다.

부활도 마찬가지다. 사망에 종노릇하던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예수께서 죽음의 권세를 깨고 살아나셨다는 사실은 온데간데없다. 그저 삶에 희망과 용기를 주는 것이 부활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세상 지식을 적당히 섞어야 사람들이 설교를 듣고 감동받는다고 생각한다. 십자가와 부활복음 대신, 윤리적 교훈과 인간적 열심이 강단을 채우고 있다. 그 결과 교회의 생명력이 약화되고 있다. 위기 중의 위기인 것이다.

십자가 부활복음을 전하지 않는 이유

목회자를 길러내는 신학자들도 마찬가지다. 십자가와 부활이 가진 신학적 의미를 심오하게 가르치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예수님께서 실제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신학자들이 의외로 많다. 이런 가르침을 받는 학생들을 통해 과연 복음의 능력이 나타날 수 있을까.

신학자들은 학생들에게 영혼을 살리는 예수 그리스도, 생명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 영혼구원 사역은 인간의 머리로 되는 것이 아니며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십자가와 부활복음을 성경대로 선포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다. 참된 회개가 일어난다. 영혼이 살아나고 교회가 살아난다. 그런데 교회가 십자가와 부활복음을 전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이 십자가와 부활복음이 가진 능력을 철저하게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 능력을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란한 수사가 아닌 예수생명의 복음을

한국교회는 영적인 생명력을 회복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생명의 복음이 설교 속에서 되살아나야 한다. 사람들은 세상 지식이나 윤리, 도덕을 듣기 위해 교회에 오지 않는다.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인생에 가장 필요한 것은 현란한 수사로 가득 찬 설교가 아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이다.

예수님은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요 6:63)고 말씀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십자가의 복음이 교회 강단에서 회복되도록 강력한 신앙운동을 벌일 때다. 이런 분명한 고백을 해보자.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딤전 2:5)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통해서만 영혼이 구원받고 교회가 영적 생명을 회복할 수 있다.”

장종현 목사 (백석대 총장)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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