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공의로 재판하라 기사의 사진
다음 넷 중 어느 것이 가장 먼저일까. 가장 중요한 것을 제일 앞에 둔다면 말이다. 그 네 가지는 예언자 왕 재판관 제사장으로, 구약 이스라엘 공동체의 지도자들이다. 구태여 구분하자면 왕과 재판관은 세속사회의 지도자이고, 예언자와 제사장은 종교지도자이다.

질문을 다시 하련다. 어느 지도자가 국가에서 또는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에서 가장 중할까.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하는 데 초석이 될까.

모세오경의 다섯 번째 책 신명기는 한 국가로서 이스라엘의 헌법과 같다. 구약학자들에 따르면 신명기는 확대된 십계명이다. 예컨대, 네 번째 계명과 관련된 안식일 절기와 축제들에 관한 일련의 율법은 14장 22절부터 16장 17절에 나온다. 이어 16장 18절부터 18장 22절까지 이스라엘의 지도자에 대한 가르침이 등장한다.

이는 다섯 번째, 곧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의 사회적 연장이고 심화이다. 부모가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존경받아야 하고, 존경받는 부모가 되라는 가르침처럼 부모에게 하듯 공적인 영역에서 존중받아야 할 리더이자 존중받기 위한 규칙을 제시한다.

저 목록의 독특성을 왕과 관련지어 설명하면 두 가지이다. 하나는 왕이 임명하지 않으며 선출된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어느 한 사람이 모든 지위를 차지할 수 없고, 우위를 점하지도 않는다. 최고의 권위이자 모든 권위의 출처가 하나님이기 때문에 누구도 모든 권력을 독점할 수 없다. 이것은 누가 봐도 왕권 제한이다. 왕정 제도의 한계와 실패를 예견했든, 사후에 반영했든 왕은 다른 리더십과 함께 권력의 균형을 확보해야 안정적으로 국가를 운영한다. 권력 분립만이 왕이 폭군이 되는 것을 막고 왕정이 폭정이 되지 않도록 한다.

그런데 순서가 독특하다. 사회 정치적으로 보면, 왕이 우선이어야 할 테고, 종교적으로 보자면 종교 시스템의 기본인 성전과 율법의 전수자인 제사장이 수위를 다툴 법하다. 한 국가의 핵심 권력이 왕이고, 왕정국가에서 왕은 국가의 근간이자 최고의 권력자라는 것에 이견이 없다.

하나, 놀랍게도 왕이 첫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 성경이 그리는 이상적 국가 지도자의 랭킹 1위는 재판관이다. 재판관이 제일 앞이고 그다음이 왕, 제사장, 맨 마지막이 예언자이다. 신명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꿈에도 그리던 약속의 땅에 진입하기 전, 모세의 고별설교이다. 모세는 바로 이 고별설교의 시작을 자기가 홀로 감당할 수 없음을 토로하며 동역자를 세우는데, 그 첫 번째가 재판관이다. 재판관은 왕의 눈치를 보거나 권력에 아부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의 세계관이다. 국정농단 이상으로 심각하게 다루어야 할 사안이 재판 거래 의혹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왜 재판관과 사법 체계를 첫머리에 배치했을까. 모세는 젖과 꿀이 흐르는 하나님의 땅에서 영구히 행복하게 사는 법을 고집스럽게 주장한다. 그것은 말씀, 곧 율법에 기초한 사회의 건설이었다. 그 말씀의 요체는 정의이고 말이다. 정의가 국가의 기초이고, 재판관은 정의의 수호자이자 대변자이다.

성경에서 재판 관련 구절을 찾으면 재판관의 권위는 두 군데에서 온다. 하나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재판장이시고 재판할 때도 곁에 계신다. 하나님보다 더 든든한 ‘빽’이 어디에 있는가. 다른 하나는 공평무사한 정의이다. 법관의 권위는 정의에서 온다. 대통령도, 국민도 아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의인과 악인을 가리지 않듯 외모를 보고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 대통령을 의식하고 재판을 했다면, 그것은 자기 존재의 부정이고 하나님에 대한 거역이다.

인간이 만든 국가의 이상이 부국강병이라면, 하나님이 원하셨던 것은 정의로운 국가이다. 그것이 신명기가 그리는, 성경 전체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이상적인 국가의 청사진이다. 그 시작은 재판관이고 법원이다. 권력에 영합해 사람을 외모로 차별했다면, 그런 이들을 위해 준비된 것은 그들 또한 하나님께 심한 차별을 받을 것이다. 정의를 따라 올곧게 재판했다면 하늘나라에서 받을 상이 크다. 재판관이 그 무엇보다 제일 앞자리임에 틀림없다.

김기현 (로고스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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