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설교] 예수님의 시간

요한복음 9장 1∼12절

[나눔설교] 예수님의 시간 기사의 사진
지난 4월 월드비전과 함께 아프리카 우간다의 엠발레 지역을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 미리암이라는 여자아이의 집과 존이라고 하는 남자아이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우간다로 향하면서 이 아이들과 깊은 사귐과 사랑의 교제가 있기를 바라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아이들과 친해졌고, 그들이 너무나 사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채 하루가 되지 않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가까워지고, 서로 이해하고 기도해 줄 수가 있었을까요.

세상에는 물리적인 시간이 있습니다. 또 예수님이 주시는 은혜의 시간이 있습니다. 왜 예수님은 이 땅에서 공생애를 3년만 보내셨을까요. 좀 더 오래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지내셨다면 더 많은 일이 이뤄졌을 텐데 말이죠.

하지만 단 하루건, 30년이건 함께한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예수님의 3년이라는 시간은 2000년 넘는 지금까지도 우리 모두에게 친밀함과 깊은 사랑의 교제를 이뤄내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시간은 같이 지낸 만큼 더 친해집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면 하나님의 놀라운 화목과 사랑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시간 속에 들어가면 막힌 담이 허물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이어주시는 참사랑의 만남이 이뤄집니다.

우리는 매 주일 예배할 때마다 하나님의 시간 속으로 들어갑니다. 이 시간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친밀함을 갖게 됩니다. 예배하는 한 시간을 통해 나머지 일주일을 이기고, 하나님의 승리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시간 안에 들어온 한 주인공을 생각해 봅니다. 그는 날 때부터 맹인인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길을 거니시다가 한 맹인을 보셨습니다. 여러 맹인이 있었을 텐데, 예수님은 유독 나면서부터 맹인이 된 바로 그 사람을 보신 겁니다. 수많은 무리 속에서 뽕나무에 오른 세리장 삭개오를 보시고, 예수의 옷자락을 만진 한 여인을 보신 것처럼 말입니다.

“이 사람이 날 때부터 맹인 된 것이 부모 때문입니까, 자기 때문입니까?”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이 질문 속에서 미리암과 존이 떠오릅니다. 우간다에서 만난 미리암의 가정은 7남매를 남겨놓고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존 역시 그 부모님이 모두 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이 아이들은 왜 그렇게 어렵고 힘든 삶의 자리에 서 있을까요. 흔히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욥의 세 친구가 욥에게 “네가 뭔가 하나님께 범죄했으니 이런 어려운 처지에 있는 게 아니냐”고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즉 이 말씀은 오늘의 고통은 과거의 업보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소망의 씨앗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눈먼 맹인을 위해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셨습니다. 그리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맹인에게 믿음의 행동을 요청하고 계십니다. 이 맹인은 믿음으로 실로암 연못으로 가서 그 눈을 씻었습니다. 그리고 눈을 떴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예수님을 통해 맹인에게 이뤄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 맹인이 ‘밝은 눈으로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이 밝은 눈이라는 의미 속에는 그 사람의 즐거움, 기쁨, 감사함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우리의 돕는 손길, 그 작은 실로암들이 모여서 큰물을 이루고 많은 아이들이 밝은 웃음을 되찾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아이들을 도울 때 예수님께서도 우리의 자녀들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양신 안성제일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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