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조윤석] 지방선거 당선인들께 드리는 당부 기사의 사진
전쟁이 끝나고 평화의 시대가 오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평화에 대한 상상만으로도 머릿속에서 꽃이 피어나는 기분입니다. 하지만 전쟁이나 대결이 아니면 뭘 할지 질문조차 해본 적 없는 세월이 너무 길었던 탓인지 당혹감과 의심을 거두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거짓말 같았던 평화가 하루가 다르게 확고한 현실이 되어가고 있고 이제 우리에게도 평화의 시대, 문화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문화는 평화와 손잡고 옵니다. 이러한 평화의 시대, 문화의 시대에 우리 공동체의 중책을 맡게 될 이번 지방선거 당선인이라면 이 정도의 문화 마인드는 가지고 계시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 이야기를 드립니다.

첫째, 평소 좋아하던 시인에게 당선 축시를 청해 보세요. 4년간 공직에 전념하는 동안 맨 처음 출마를 결심하던 때의 마음을 잊지 않도록 시로 남겨놓는 겁니다. 앞으로 인사를 할 자리가 많으실 텐데 그런 자리에서 이 시를 암송한다면 얼마나 멋지겠습니까. 좋아하는 시인이 아직 없다면 제가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당선인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 왔고, 앞으로 어떤 일을 꼭 성취하고 싶은지 포부를 들려 주시면 시인이 알아서 잘 써 주실 겁니다. 그리고 시 한 편의 원고료가 시중에서는 정말로 소정이라고 하니, 당선인께서는 부디 아끼지 말고 봉투에 두둑이 넣어 주시기를 당부 드립니다.

둘째, 그림을 한 점 사십시오. 그림을 사는 일이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특별한 일이었지만 다가오는 문화의 시대에는 일상적인 일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그림을 잘 모르는데 괜히 돈 버리는 일이 아닐까 염려 마시고, 어느 누구에게 묻지도 마시고, 그림 값이 앞으로 얼마나 오를까 따지지도 마시고,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오직 자신의 마음에 드는 그림을 골라 보십시오. 왜 그림을 사야 하는지 설명 드리기는 어렵지만 그림을 한 점 사 보시면 압니다. 그림이 당신에게 주는 ‘무엇’이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4년간 매월 급여를 받으실텐데 그림 값으로는 한달치 월급이면 어떨까 싶습니다.

셋째, 당선인의 선거구 노래를 만들어 주세요. 왜 부산 사람들은 “다른 종목은 그냥 스포츠, 야구는 야구”라고 할 만큼 야구를 편애하는 걸까요. 부산에는 일제 강점기부터 야구팀이 있었고 6·25 때도 야구 시합이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만큼 야구는 부산에서 단순한 스포츠 경기가 아닌 특별한 무엇인가 봅니다. 여기에는 부산 사람들이 사직구장에서 함께 입을 모아 부르는 부산 노래가 크게 한몫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고향이 서울이라 그런지 이런 문화가 참 부러웠습니다. 이웃들과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넷째, 단편영화에 출연해 보세요. 지금 이 순간에도 미래의 대가들이 단편영화를 제작하고 있으며 출연진을 찾고 제작비를 조달하러 뛰어 다니고 있습니다. 당선인도 영화에 출연하실 수 있습니다. 연기를 잘하시진 못해도 조연 정도의 역할은 충분히 해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단편영화 감독들은 당선인보다 20∼30년 젊은 나이일 겁니다. 당신은 인생의 선배로서, 성공한 정치인으로서 작품의 세밀한 부분에서 완성도를 높여줄 것이고 영화 홍보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제작비를 후원해 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마지막으로 재임기간 중 새로운 건물을 짓는 일은 2020년 이후로 미뤄 주세요. 지금은 기후변화로 인해 건축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2020년부터 건축물 허가 기준을 강화해 모든 신축 공공 건축물은 ‘제로 에너지 건물’(소비하는 에너지와 건물 내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이 같아 에너지 소비를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건축물)로 짓도록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2년만 참으면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건물을 지으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건물은 어떤 디자인으로, 어떻게 지을지 설계할 때가 제일 재미있습니다. 부디 그 재미를 오래오래 즐겨 주시기 바랍니다.

조윤석 십년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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