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수 칼럼] 북, 생존을 넘어 생활하라 기사의 사진
대륙간탄도미사일 있는데 싱가포르까지 날아갈 비행기 없는 모순 타개해야
안전 위해 체면 포기하고 빌려타는 실용 택했듯 핵 포기하고 번영의 길로 가길


기자가 된 뒤 해외출장을 가기 위해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탔을 때, 이 크고 무거운 비행기가 어떻게 뜨는지 신기했다. 몸무게가 제법 있기 때문에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비행기가 착륙할 때까지 한숨도 자지 않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싱가포르로 갈 때 중국 비행기를 빌려 탔다. 김 위원장의 전용기 ‘참매1호’는 1970년대 옛 소련 시절 제작된 ‘일류신(IL)-62M’을 개조한 것으로 1995년 단종됐다. 이론적으로 최대 비행거리는 1만㎞여서 평양에서 5000㎞가량 떨어진 싱가포르까지 갈 수는 있다. 하지만 한 번도 그렇게 긴 거리를 비행한 적이 없다. 북한 고려항공이 보유한 같은 기종 여객기도 평양에서 중국 베이징·상하이·선양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등 1000㎞ 이내만 날고 있다. 2014년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이 특사로 러시아에 갈 때 엔진 고장으로 비행기를 중간에 되돌린 적이 있다. 1983년 이 기종이 아프리카 기니에서 추락해 23명이 사망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미 항공전문지 ‘에어웨이 매거진’의 엔리케 페렐라 편집장은 2016년 방북 후 “고려항공이 가진 20여대의 항공기 중 운항이 가능해 보이는 것은 매우 적었다”며 “활주로에 있던 항공기 중 일부는 커버로 덮여 있거나 부품이 떨어져 있었다”고 증언한 적이 있다.

직접 경비행기를 조종해 하늘을 나는 영상이 공개될 정도로 비행기 타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는 김 위원장이지만 참매1호로 싱가포르까지 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그래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세기의 담판, 서방 외교무대 첫 데뷔라는 중요한 행사임에도 국적기를 포기했다. 위신이나 체면보다 안전을 택한 것이다. 그래서 김 위원장은 솔직하고 실용적인 구석이 있어 보인다. 김 위원장이 남북 정상회담 때 문재인 대통령에게 “북한에 오시면 우리 교통이 불비해서 불편을 드릴 것 같다. 참 민망스러울 수 있겠다”고 말했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은 만들면서 싱가포르까지 날아갈 비행기는 없는 모순이 드러나는 민망스러운 상황을 이번에 무릅쓴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하늘의 요새로 불리는 ‘에어포스원’을 타고 온 트럼프 대통령에게 꿇리지 않기 위해 중국 고위층이 타는 전용기를 이용했고, 내 뒤에 중국이 있다는 메시지를 주려는 의도라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마땅한 비행기가 없어 빌려 탄 것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김 위원장은 스위스에서 유학했던 경험 등으로 인해 비교적 생각이 열려 있고 경제 발전에 대한 갈망이 많을 수 있다. 김 위원장이 싱가포르에서 깜짝 야간관광을 하고 데니스 로드먼 미국 프로농구 선수 출신을 ‘절친’으로 꼽는 것도 선진 문물에 대한 동경이 담겨 있다고 봐야 한다. 북한은 수출로 돈을 벌어야 경제가 유지되는 구조다. 지금은 강력한 대북제재로 돈줄이 막혀 있다. 김 위원장이 지배력과 통제력 유지를 위해 당 간부들에게 나눠줄 돈이나 선물도 부족하다. 상당수 주민들이 굶주리고 있는 등 민간경제 또한 말이 아니다. 극심한 경제난을 자력으로 극복하기 불가능한 상황이다. 배급 체계가 무너져 장마당이 늘어나고 있고, 휴대폰과 한국 콘텐츠가 유입되면서 주민들도 북한의 실상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다. 최고 존엄이 지시한 화폐개혁이 실패했듯이 주민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통제도 불가능해졌다.

북한은 미국의 공격을 막기 위해 핵을 개발했다고 하지만 핵 때문에 오히려 체제가 흔들리는 역설적인 상황에 처했다. 북이 생존을 위한 보유용으로 핵을 만들었든, 협상용으로 만들었든 이제는 핵을 내려놓을 때가 됐다.

북은 핵을 포기한 뒤 무장 해제가 되면 미국이 무력으로 공격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듯하다. 그러나 중국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비핵화한 북한을 공격할 수 없고, 한다 해도 이득은 없고 피해는 엄청날 것이다. 더구나 북·미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와 북한에 대한 안전 보장 제공에 합의했다. 만일 미국이 이 합의를 깨고 뒤통수를 치려 한다면 우리 국민부터 나서서 강력 반대할 것이다. 더구나 핵이 밥 먹여 주는 것도 아니다. 핵을 포기할 때 김 위원장의 할아버지 김일성이 북한 주민들에게 “이밥(쌀밥)에 고깃국을 먹게 해주겠다”고 한 약속을 지킬 수 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체제 보장과 경제 지원은 분명히 이뤄진다. 김 위원장이 안전을 위해 국적기를 포기했듯이 체제 안전과 주민들의 인간다운 생활을 위해 핵을 포기하기 바란다. 생존을 위협받는 북이 이번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활로를 찾아가는 모습을 보고싶다.

논설위원 js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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