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시위, 왜 익명을 고집하나… ‘집회 촬영’ 논란 확산 기사의 사진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규탄시위)가 열린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소동이 일어났다. BJ(인터넷 방송인) 김모(33)씨가 시위 현장을 인터넷으로 생방송하자 참가자들이 찍지 말라며 항의해 말다툼이 벌어졌다. 참가자들은 초상권을 주장했지만 김씨는 “법원에서 집회·시위는 촬영이 가능하다고 했다”며 중계를 이어갔다. 흥분한 참가자가 촬영 중인 김씨의 휴대전화를 밀치기도 했다.

여성들이 주로 모이는 페미니즘 관련 집회는 참가자들이 사진이나 영상 촬영에 극히 민감하다. 페미니즘 관련 집회에서 외모가 노출된 여성들이 온라인에서 성희롱과 모욕에 시달리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2일 불꽃페미액션 회원들이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비판하며 상의를 탈의한 시위 사진이 온라인에 올라오자 “구토가 나고 울렁거린다” “죄다 못생겼다”와 같은 인신공격성 댓글이 달렸다.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페미니즘 집회 참가자들의 사진이 공유돼 욕설과 조롱의 대상이 된다. 신원을 추적해 개인에게 비난을 쏟아붓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 페미니즘 관련 집회 주최자들이 촬영을 제한하거나 거부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지난달 19일 열린 1차 규탄시위에서 운영진은 ‘시위자 얼굴과 옷차림을 모자이크 처리하고 클로즈업 사진은 찍지 말라’는 보도 가이드라인을 정했다. 일반인의 촬영은 아예 금지했다. 2차 규탄시위 참가자들은 자신들을 촬영하는 남성들을 향해 “몰카충(몰래카메라를 찍는 벌레 같은 인간)” “찍지 마”라고 외치며 항의했다. 운영진은 “시위 자체가 몰카 촬영물의 유포를 규탄한 만큼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일반인의 촬영을 모두 금지했다”고 설명했다.

집회 측은 사진 찍히는 것을 피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대책을 마련하곤 한다. 규탄시위 운영진은 참가자들에게 “시위가 끝날 때까지 신상 보호가 최우선”이라며 “마스크, 선글라스, 모자 등으로 얼굴을 철저히 가리고 본인을 알 수 있는 특성을 노출하지 말 것”을 권했다.

촬영 제한은 그러나 더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알린다는 집회·시위의 목적과는 배치된다. 서울중앙지법은 2009년 판결을 통해 “공공장소에서의 집회·시위는 본질적으로 남에게 알리기 위한 행동”이라며 “(언론이) 본인 동의 없이 시위자를 촬영해 보도했더라도 초상권 침해로 볼 수 없다”고 명시했다. 언론이 아닌 일반인의 촬영에도 비슷한 판결이 있었다. 수원지방법원은 2008년 시민단체 기자회견을 회사원이 무단으로 촬영한 사안에서 “기자회견, 연설 등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공중이나 언론에 홍보하기 위해 타인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행위를 한 경우 초상이 촬영되거나 공표되는 것을 묵시적으로 승낙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기자회견 참가자의 초상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페미니즘 집회처럼 주최 측이 촬영 거부 의사를 미리 밝힌 경우라면 법적인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CRC 크라운 법률사무소의 김도훈 변호사는 “판례의 경우 ‘명시적·묵시적 승낙’ 의사가 있었기 때문에 초상권 침해를 부정한 것으로 보인다”며 “규탄시위처럼 촬영을 거부했다면 초상권이 문제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일반인이 참가자를 모욕할 의도로 촬영한다면 초상권 침해로 볼 수 있다고 김 변호사는 강조했다. 2009년 판결에서도 “피촬영자를 모욕하거나 비방할 목적으로 촬영된다면 언론 보도라 할지라도 초상권 침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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