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바꾸려 투표” 무관심 걱정 떨쳐낸 유권자들 기사의 사진
전동스쿠터를 탄 한학규씨(97)가 13일 경남 남해군 남면 행정복지센터에 마련된 투표소에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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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가 세상을 바꾼다”는 기대감으로 지방선거일인 13일 전국의 유권자들이 투표에 나섰다. 이른 새벽 투표소를 찾은 고시생부터 어린 아들딸과 함께 투표하러 온 젊은 부모들, 자손들의 부축을 받은 할머니까지 남녀노소 모두 소중한 한 표를 던졌다.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 등 한반도 평화 이슈에 묻혀 선거에 관심이 낮을 것이라는 우려가 무색했다.

투표에 참여한 시민들은 촛불혁명과 탄핵, 대선을 경험하며 참정권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선거에서는 정당보다 정책, 공약, 인물을 더 살펴봤다는 유권자들이 많았다. 후보 검증의 중요성을 깨달았다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민주주의가 한층 성숙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기도 안성 출신인 임성우(22)씨는 “보수 성향이 강한 지역에서 태어나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편이었다”며 “촛불집회와 탄핵을 지켜보면서 정당보다는 공약과 인물을 우선적으로 보게 됐다”고 말했다. 34년째 서울 성수동에서 사는 홍모(58)씨도 “서민들 장사에 신경 쓰는 후보를 뽑기 위해 공약을 꼼꼼히 살펴봤다”며 “이번만큼은 정당에 구애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관절염으로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투표장에 나온 전귀순(82)씨는 “예전에는 TV에 나오는 겉모습만 보고 뽑았는데 탄핵 정국을 거치며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그러면 안 되겠더라”며 “정치는 잘 모르지만 선거 공보물을 꼼꼼히 읽고 좋은 정책을 제시하는 후보를 골랐다”고 했다.

이동경(45)씨는 아들 정우(11)군의 손을 꼭 잡고 서울 영등포구의 한 투표소를 찾았다. 이씨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촉구 촛불시위 후로 정치에 대한 아들의 관심이 높아졌다”며 “촛불시위가 특별한 기회였다면 선거는 일상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과정이란 것을 알려주기 위해 동행했다”고 말했다. 김인선(38)씨도 두 딸과 함께 투표소에 왔다. 김씨는 투표하는 방법을 하나하나 설명해주고 인증사진까지 찍으며 “부모가 투표를 해야 훗날 아이들도 자신의 권리를 가볍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아 함께 왔다”고 말했다.

후보별 공약을 ‘열공’하는 분위기도 감지됐다. 각 후보 정보를 제공하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했다거나 관심 있는 분야의 공약만 따로 정리했다는 청년들도 눈에 띄었다. 대학생 성경림(27)씨는 “선거 공보물은 기본으로 봤고 후보 공약을 정리한 앱도 설치해 들어가 봤다”며 “무상교복 지하철역 체육관 관련 공약 등 여러 가지를 꼼꼼히 살펴봤다”고 말했다. 자영업자 지윤섭(71)씨는 “특히 민생 공약으로 어떤 걸 내놨는지 유심히 봤다”며 “후보가 많아서 헷갈렸는데 몇 번을 찍어야 할지 미리 외우고 왔다”고 했다.

대학원생 김승현(31)씨는 현실성 있는 공약을 내놓은 후보들에게 높은 점수를 줬다. 그는 “지키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공약을 내건 후보들이 많았다”며 “허황된 공약을 남발한다고 느껴지는 후보들은 선택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말했다.

상반기 내내 뜨거운 이슈였던 페미니즘과 미투(#MeToo)운동도 유권자들의 관심사였다. 온라인에서는 ‘#투표용지에_여성정치인’ 해시태그운동이 화제가 됐다. “투표용지에서 여성 후보를 단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여성 정치인이 필요하다”는 글이 줄을 이었다.

출근 전 투표소에 들른 회사원 임모(28)씨는 “이번에 투표할 때는 성차별 이슈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고려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불법 촬영이나 성폭력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선 이를 더 잘 이해해 줄 수 있는 후보가 필요하다고 느꼈다”며 “여성 후보와 여성 관련 공약을 유심히 살펴봤다”고 말했다.

최저임금과 실업률 등 경제 현안에도 관심이 높았다. 안경점을 운영하는 이정우(31)씨는 “최저임금과 월세가 급격히 오르면서 사업하는 사람들은 많이 힘들어졌고 취업난도 해결되지 않았다”며 “후보들의 경제 공약을 꼼꼼하게 봤다”고 말했다. 30년간 시장에서 장사를 했다는 김모(81)씨도 “중간상이 마진을 다 가져가는 통에 소매상들은 죽을 지경”이라며 “있는 사람들만 잘사는 세상이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투표했다”고 했다.

몇몇 유권자들은 아쉬움을 표시했다. 정종준(48)씨는 “생활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 지방선거인데도 북·미 정상회담 등 다른 이슈에 묻히면서 후보 개개인의 공약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고 평했다.

이재연 조민아 강경루 방극렬 기자jay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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