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영석] 지금이 보수 정당 재구성의 적기다 기사의 사진
보수 정당 역사상 최악의 참패다. 자유한국당의 광역단체장 선거 성적표는 2승 15패다. 민주자유당 시절이던 1995년 제1회 지방선거의 5승 10패라는 최저 기록을 경신했다. 서울과 경기도, 인천 등 수도권 전체를 내준 것도 처음이다. 보수 정당의 텃밭이라고 불리던 부산과 울산, 경남도 사수하지 못했다. 서울 강남 불패 신화도 깨졌다.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으로 보수의 성지로 여겨지던 경북 구미에서조차 참패했다. ‘TK(대구·경북) 자민련’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궤멸 또는 몰락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바른미래당의 성적은 더욱 참혹하다. 광역단체장 선거를 비롯해 기초단체장,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모두에서 1승도 건지지 못했다. 특히 차기 대권을 노리던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의 3등은 치명타다. 안 후보 개인의 진퇴를 넘어 당의 존립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일찍부터 예상된 결과였다. 선거의 3대 변수를 구도와 이슈, 바람이라고 한다. 보수 야당은 그 어느 것 하나도 주도하지 못했다. 중간선거는 정권 심판론이 대세였지만 이번엔 야당 심판론이 득세했다. 드루킹 특검, 여배우 스캔들이라는 호재가 있었지만 이부망천(이혼하면 부천 살고 망하면 인천 산다) 발언으로 한방에 날아갔다. 올드보이 후보 일색이다 보니 바람이 일 리 없었다. 북핵 국면 탓이라고 변명할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참패를 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업자득이다. 한국당의 공감 능력 부족이 빚어낸 참극이다. 북핵 이슈는 하루가 다르게 변모해 가는데 색깔론 공세만 되풀이했다. 냉전수구적 보수의 몽니에 다름 아니다. 한국당의 “나라를 통째로 넘기겠습니까”라는 구호는 한심하기까지 했다. 최순실씨에게 나라를 통째로 맡겼던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기억이 국민들의 뇌리에는 아직도 생생하다. 10%밖에 안 되는 태극기 부대용 호소로 일관했으니 누가 표를 주겠는가. 홍준표 전 대표의 막말 리더십은 최대 리스크였다. 바른미래당도 연일 공천 갈등을 표출하며 남아 있던 한줌의 신뢰마저 상실했다. 국민들은 기존 보수 정당에 레드카드를 내밀었다.

달리 보면 보수 정당의 기회일지 모른다. 기존 보수 정당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야 보수 세력의 재기가 가능하다. 굴욕적으로 명맥을 이어가느니 죽어서 다시 사는 길을 모색할 때가 됐다. 철저히 망한 지금이 보수 정당을 보수할 적기다. 지도부 총사퇴에 이어 전당대회를 통한 새 지도부 선출이라는 전통적 해법으론 대처할 수 없다. ‘도로 한국당’이 재탄생할 뿐이다. 리모델링이 아닌 재건축이 필요하다. 두 보수 야당의 몸집 키우기식 통합만으론 부족하다. 재야의 건전 보수 세력까지 포함한 ‘빅 보수 텐트’가 필요하다.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대통합 과정에서 자리싸움 같은 퇴행적 행태를 반복한다면 국민 신뢰 회복은 요원하다.

보수 가치의 재정립도 중요하다. 목표는 4년 뒤 대권 탈환이다. 지금은 강한 야당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시대정신을 제대로 읽고 새 비전을 제시하는 똑똑한 보수 야당이 필요하다. 이념 스펙트럼에 얽매이지 않는 유연한 보수여야 가능하다. 최대 약점인 2030세대와 여성, 그리고 호남을 아우를 수 있는 가치를 만들어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선거에는 졌어도 인물은 남겼어야 했는데 보수 야당엔 잠룡은커녕 토룡조차 없는 상황이 됐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위기에 처했던 영국 보수당이 약관 39세의 데이비드 캐머런을 대표로 앞세워 정권을 탈환했던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과거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의 40대 기수론도 좋은 참고 대상이다. 기존 인물들을 그대로 둔 채 표를 달라고 하는 것은 국민들을 우롱하는 처사다. 폐허 위에서 새로운 싹을 키워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젊은 인재들을 대거 수혈해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그것만이 보수 정당의 살 길이다. 건강한 보수 정당의 출현으로 대한민국 진보 세력과의 선의의 경쟁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논설위원 ys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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