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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세은의 씨네-레마] 얼굴, 다양한 삶의 풍경들

[임세은의 씨네-레마] 얼굴, 다양한 삶의 풍경들 기사의 사진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Faces Places,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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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90세를 맞은 아녜스 바르다는 1960년대 프랑스 누벨바그를 대표하는 여성 영화감독이다. 여성주의 영화를 포함해 최근까지 개인적 관심사를 담은 에세이 영화를 만들고 있다. JR은 거리의 행위예술가로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33세의 젊은 사진작가다. 57년이란 엄청난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작업은 신기하게 겹치는 구석이 있다. LA 거리의 벽화에 대한 다큐멘터리 ‘벽, 벽들’과 ‘다게레오타이프’ 같은 사진에 관한 다큐멘터리, 그리고 미술작품에 대한 영감을 얻어 인물의 자세를 탐구해 가는 다큐멘터리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에서 바르다는 우연히 만난 거리의 사람들과 예술작업을 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그들의 모습과 삶을 영화에 담아왔다.

JR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만난 사람들의 모습을 거대한 사진에 담에 벽에 전시하는 예술가다. 바르다는 그의 사진집에서 젊은 사진작가가 포착한 노인들의 주름진 얼굴에 주목했다. ‘이런 시선으로 노인을 담아내는 젊은이라면 함께 일해 볼 만하겠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시작된 그들의 만남은 노장 할머니와 젊은 사진작가가 포토트럭을 타고 프랑스 전역을 돌아다니는 것으로 확장된다.

두 사람은 프랑스 지방 곳곳을 떠돌면서 즉흥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고 즉석에서 사진을 출력하고, 거대한 사진을 마을 벽에 붙인다. 마을은 전시장이 되고 평범한 마을 사람들은 거대한 벽화처럼 주인공이 된다. 폐광촌이 되어 사람들이 떠나버린 마을에 마지막 남은 한 사람을 위해 옛 광부의 모습을 되살리기도 한다. 존재 이유가 없어졌던 마을은 이런 이미지들로 순간 생동감을 되찾는다. 역사의 한편으로 사라질, 하지만 너무나 소중하고 생생한 수많은 기억이 사진과 벽화 덕분에 되살아나 주민들에게 감동적인 선물이 된다.

여기서 나타나는 사람들의 얼굴은 하나의 풍경이다. 한 마을의 풍경이 한 인간의 얼굴과 겹쳐진다. 얼굴은 풍경이 되고, 풍경은 하나의 얼굴이 된다. 에펠탑이 파리의 얼굴이고 빅벤 시계탑이 런던의 얼굴이듯, 사람들은 자신의 얼굴에 고유한 풍경을 펼쳐 보인다. 바르다와 JR이 담은 것은 단순히 사람들의 얼굴만이 아니라 프랑스 지방의 변화하는 삶의 풍경이다.

폐광촌이 된 마을, 농사의 기계화로 인해 일손이 필요치 않아 혼자 거대한 땅을 경작하는 농촌의 풍경과 뿔 없는 염소가 뛰어다니는 목축의 풍경도 있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뿔을 잘라내 버리는 인간의 이기심은 숫자로 환원되는 경제논리 앞에 인간성과 생명존중이 상실된 삶의 풍경이다. 마을의 풍경은 현대를 사는 인간 내면의 풍경이다. 하지만 유머와 삶의 여유를 잃지 않는 두 사람은 여전히 옛날 방식으로 염소를 키우는 사람들을 찾아내고 그들을 기억하려 한다. 그리고 뿔이 달린 거대한 염소 사진을 남겨 놓는다.

두 사람의 예술활동은 현대적 인터넷의 삶으로 연결된다. 벽에 붙인 거대한 사진의 주인공은 무명의 사람들이다. 주변 몇몇 사람에게만 기억되던 그들의 얼굴이 거대한 벽화가 될 때 다른 의미로 확장된다. 거대한 사진 앞에서 사람들은 셀프카메라를 찍고, 그것을 저마다 SNS에 올린다. 현대사회는 무명의 사람들을 마을의 유명인으로 만든다. 또한 바르다는 과거 자신의 기억과 현재의 순간을 이어 붙인다. 기억은 사람들을 통해 다시 태어나고 또 다른 추억을 만든다.

이렇게 바르다와 JR의 카메라는 결정적 시간을 포착하고 보존한다. 이제는 죽음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노년의 바르다처럼 바닷가 바위에 새긴 사진처럼 파도에 의해 사라질 것이다. 그저 우연히 만난 무명의 사람들과 우정을 나누고 소중한 기억을 만드는 기쁨의 순간이면 족하다. 바르다와 JR은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을 마주하는지를 반추하게 한다. 타자의 얼굴이란 신의 흔적과도 같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는 성경구절처럼 무명의 낯선 이를 대면하는 것은 타자의 얼굴을 통해서 내게 말을 거는 신에게 다가서는 것이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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