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김재천] 트럼프, 기만의 기술 기사의 사진
필자는 북·미 정상회담 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광설 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연구실 책장 앞 칸을 차지하고 있던 그의 저서 ‘거래의 기술(Art of the Deal)’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두 번을 정독한 거래의 기술은 재미있고 유익했다. 일화를 소개하며 제시한 협상 성공의 11가지 원칙은 공감을 자아냈고, 돈을 위해서가 아니라 예술(art)의 경지에서 협상을 즐긴다고 설파한 부분에서는 거상(巨商)의 풍모가 느껴지기도 했다. 트럼프는 오래전부터 협상의 달인임을 자처하며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최고의 협상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협상을 모르는 버락 오바마가 이란과 협상에 실패해 군사공격을 감행할 것이라는 억측을 트위터에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대통령 취임 후 트럼프가 보여준 모습은 ‘협상의 달인’이 아닌 ‘협상깨기의 달인’이었다. 돈을 위해 협상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오로지 돈만을 위해 거래하는 졸부의 모습이었다. 그래서인지 일단 질러놓고 보는 대통령 트럼프의 협상 성적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그가 파기한 수많은 국제협정의 후속 협상은 대부분 좌초 상태이고, 그나마 내놓은 북·미 정상회담 협상 결과는 속빈 강정이다.

북·미 정상회담 자체를 폄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냉전의 잔재 청산과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구축이 역사의 순방향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북한 비핵화 로드맵과 일정표 없이 떠나는 평화구축의 역사적 여정은 고될 수밖에 없다. 마거릿 맥밀런이 쓴 ‘닉슨과 모택동: 세상을 바꾼 한 주(The Week That Changed the World)’를 읽어 보시라. 1972년 미·중 정상회담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철두철미한 사전준비와 물밑합의가 선행되었기에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트럼프는 북·미 정상회담 개최-취소-재개를 너무 즉흥적으로 결정했다. 북·미는 정상회담 당일 새벽까지 진행된 물밑협상에서도 비핵화-체제보장 입장조율에 실패했고, 통 큰 지도자들의 빅딜도 없었다.

트럼프는 후속협상을 기대하라고 하지만 정상회담 개최를 목전에 두고 전개된 치열한 사전협상으로도 좁히지 못한 간극을 과연 후속협상에서 좁힐 수 있을까. 트럼프는 기자회견에서 김정은 북한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니 가능하다고 했다. 한 기자가 김정은의 진정성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었느냐고 물었다. 난 전임 대통령과 다른 타고난 협상가이고 상대를 만나면 수초 안에 진심을 알 수 있다고 답했다. 이정도면 거의 “내 눈을 바라봐, 넌 행복해지고”의 허경영 수준이다. 대한민국은 이제 김정은의 진정성과 트럼프의 직관과 알량한 협상력을 믿고 비핵화-평화체제구축의 험난한 여정을 떠나야 하는 딱한 신세에 처하고 말았다.

트럼프는 북·미 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서 뉴욕의 낡은 빌딩을 겉만 번드르르 페인트칠해 고급 콘도미니엄이라고 속여 파는 저속한 부동산 개발업자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러한 거래는 ‘기만의 기술’이 있으니 가능한 일이다. 설계도도 없고 일정도 모른 채 시공에 들어가는 한반도 재건축 작업은 부실공사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 부동산 개발업자는 그나마 건물을 지탱하고 있던 기둥 하나(한·미 연합 군사훈련)를 비싸고 흉측하다며 슬그머니 철거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트럼프에게 공사를 떠넘긴 문재인정부는 기둥을 빼라고 했나, 아니면 기둥이 빠지는지도 몰랐나. 어떠한 경우라도 이런 부실공사를 중개하고 조속한 입주에만 골몰해 있는 문재인정부는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수 있다. 트럼프는 기자회견에서 그의 기만의 기술을 슬쩍 공개했다. 한 기자가 질문했다. 김정은에 대한 트럼프의 판단이 틀리면 어떻게 할 것인지. “내가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어떤 변명이라도 찾아낼 것이다(I may be wrong, but I will not admit that. I will come up with some kind of excuse).” 기만의 기술에도 특별한 것은 없었다. 그저 핑계대기 남 탓하기.

김재천 서강대 국제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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