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남도영] 한국 보수가 만들어내야 할 가치 기사의 사진
보수주의를 규정하는 명쾌한 정답은 없다. 학자들마다 정의가 다르고, 조금 추상적이고 어렵다. 짧은 문장으로 정리하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보수주의를 “새롭고 아직 시도하지 않은 것보다, 낡고 여러 번 해본 그 무엇을 고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저명한 보수주의 사상가 러셀 커크(1918∼1994)는 ‘보수의 정신’에서 보수주의 사상의 핵심 기둥을 여섯 개로 정리했다. 신의 섭리를 인정하는 것, 협소한 획일성과 평등주의를 거부하는 것, 질서와 계급을 중시하는 태도, 자유와 재산은 밀접하게 연결된다는 신념과 오래된 규범이나 관습에 대한 존중, 신중한 변화다.

보수주의자는 선명한 이념이나 급진적인 개혁보다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전통과 관습을 중시한다. 그런데 전통과 관습은 나라마다 다르다. 영국의 보수주의와 미국의 보수주의, 일본의 보수주의가 모두 다른 이유다. 영국에서는 보수주의가 귀족정치와 비슷하게 여겨졌던 때도 있었고, 대처 총리 시절에는 신자유주의와 동일어로 인식됐다. 이후 진보의 핵심 정책인 복지정책을 대폭 받아들인 온정적 보수주의가 등장하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세금이나 낙태 등이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주요한 이슈가 되고, 미국 우선주의가 보수주의로 포장되기도 한다.

거칠게 정리하자면, 보수주의는 특정한 주의·주장보다는 과거의 훌륭한 전통을 존중하고, 제기되는 문제들을 급진적인 변화보다는 점진적인 변화를 통해 풀어가며, 도덕성이 중요한 기준이 되는 주의 정도일 것이다.

6·13 지방선거 결과를 한국당이라는 특정 정당의 참패나 홍준표 전 대표라는 개인의 실패로 보는 의견에 동의하기 어렵다. 오히려 한국 보수가 그동안 내걸었던 가치가 국민들로부터 외면받은 게 아닌지 진지하게 검토할 때다.

한국 보수가 70년간 내걸었고 지켜왔던 가치는 색이 바래졌다. ‘빨갱이’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반공·반북주의, 미국은 무조건 옳다는 극단적인 미국 우선주의, 대가를 요구하지 못하는 성장 우선주의, 국가에 대한 헌신을 주장하지만 스스로는 국가에 봉사하지 않는 특권주의, ‘불가능은 없다’라는 수직 계열화된 군사 문화다. 산업화를 이룩했다는 것만으로 모든 게 용서됐던 한국 보수의 가치들은 재검토할 때가 됐다. “우리 사회를 이만큼 살게 만들었다”는 자부심은 ‘헬조선’을 외치는 젊은이들에게 과거 무용담일 뿐이다. 도덕적 기반과 자기희생의 전통 없이 기득권의 옹호자로 활동하며 모든 문제를 북한에 떠넘겨버린 결과물이 지난 6·13 지방선거다. 일부 학자는 오래전부터 “한국 보수가 지키려는 가치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지적해왔다.

보수주의가 과거의 훌륭한 전통과 관습, 도덕성을 지키고 점진적으로 개선하는 것이라면, 한국의 보수주의자는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지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지킬 게 뭔지 알 수 없다면 찾아야 한다. 훌륭한 보수의 전통과 가치는 많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 개혁,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산업화, 백범 김구 선생의 민족주의와 임시정부의 정신, 구한말 망국을 슬퍼하며 목숨을 끊었던 선비들과 가산을 정리해 만주를 떠돌았던 독립지사들도 한국 보수가 유지·발전시켜야 할 전통이자 가치다. 그동안 한국의 보수정당은 훌륭한 전통을 공격하고 부정해왔던 게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지난 대선 유승민 후보가 말했던 ‘개혁 보수’ 노선이 국민들의 귀를 사로잡았던 것은 일부분일망정 보수의 새로운 가치를 말했기 때문이다.

김성태 한국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18일 당 혁신비상대책위원회와 구태청산 태스크포스(TF) 구성 방침을 밝혔다. 김 권한대행은 “수구적 보수, 냉전적 보수를 다 버리고 합리성에 기반한 새로운 이념적 지표를 세우겠다”고 말했다. 이어 “기득권 보수가 아니라, 수구 냉전 반공주의에 매몰된 낡은 주장을 스스로 혁파하는 정의로운 보수의 뉴 트렌드를 만들겠다”고 했다. 너무나도 맞는 말이다. 문제는 실천이다. 한국당이 지난 10년간 만들었던 수많은 혁신위의 결과를 생각해보면 많은 기대를 걸고 싶지는 않다.

남도영 디지털뉴스센터장 dy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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