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스페셜/월드] 북·미 회담 철통경호로 주목받은 전설의 용병 구르카 기사의 사진
구르카 용병들이 전통무기인 쿠크리 단검을 들고 훈련 중인 모습. 구르카 용병은 영국은 물론 인도 브루나이 싱가포르 등 각지에서 군과 경찰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다. 영국군 구르카 용병들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 중동전쟁에도 파병돼 활약했다. 스쿠프후프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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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의 외곽 경비·경호를 맡았던 현지 특별경찰팀은 네팔 출신 구르카 용병으로 구성된 치안조직이다. “겁쟁이가 되느니 죽는 게 낫다”는 신조를 가진 구르카 용병은 지난 200년간 세계 주요 전쟁에 참가해 용맹을 떨쳤다.

히말라야 산맥 등 고산지대 출신인 이들은 심폐 기능과 지구력, 인내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평균 신장이 160㎝ 내외로 작지만 한 사람이 여러 명과 맞붙어도 제압할 만큼 백병전에 강하다. 야간 시력과 청각이 발달해 사격술에도 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르카 용병이 휴대하는 약 46㎝ 길이의 ‘쿠크리’ 단검은 용기와 명예의 상징이다. 10세 전후로 성인식을 치르면 한 자루씩 주어지는 곡선 형태의 이 칼은 한 번 빼들면 반드시 피를 묻혀야 한다는 계율이 있다. 영국군 동료가 쿠크리를 보여 달라고 부탁하자 칼을 빼든 구르카 병사가 자기 손가락을 베어 피를 묻힌 뒤 칼집에 꽂았다는 일화가 있다.

전설적 용병이 된 소수부족 구르카

원래 몽골계였던 구르카족은 18세기 네팔 중심부를 몽골이 점령하면서 인도·아리안 계통과 섞였다. 용병 구르카는 순수 구르카족 출신뿐 아니라 마가르족, 구룽족 등 네팔 다른 부족 출신도 적지 않다.

구르카의 존재가 외부로 처음 알려진 건 1814년 영국군이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네팔 왕국을 침입했을 때다. 당시 신식 무기로 무장한 영국군은 쿠크리 한 자루로 맞선 네팔 소수 산악부족 구르카에 참패하고 서둘러 평화조약을 맺었다. 한 영국군 병사는 “나는 살면서 (구르카족이 보여준 것보다) 더한 침착함과 용맹함을 보지 못했다. 그들은 도망치지 않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고 회고록에 적었다.

영국은 이후 동인도회사를 통해 높은 급여를 주고 구르카족을 용병으로 채용하기 시작했다. 가난한 부족이었던 구르카에게는 생계를 위한 취직이었다. 구르카 용병은 1857년 인도 용병들의 반란인 세포이 항쟁을 진압하며 영국으로부터 신임을 받고 각종 전투에 본격 투입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구르카 용병은 일본군이 절대적 우위였던 정글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버마 전선 임팔 전투에서 구르카 대대 디마푸르 중사가 쿠크리 한 자루를 들고 일본군 참호에 들어가 24명의 목을 벤 사례가 유명하다. 디마푸르 중사는 영국 왕실로부터 최고 훈장인 빅토리아 무공훈장을 받았다. 2차 대전 중 북아프리카 전선에서는 영국인 장교가 자신들을 “야만인”이라고 부르며 무시하자 다음 날 독일군 10명의 목을 잘라와 장교 막사 앞에 늘어놓기도 했다.

6·25전쟁에도 영국군 일원으로 참전해 지평리(경기도 양평) 전투에서 중공군 1개 사단을 섬멸한 사례는 전설처럼 회자된다. 1982년 영국·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 전쟁에서는 “구르카가 온다”는 한마디에 포트 스탠리를 수비하던 아르헨티나군 전체가 투항했다는 믿지 못할 일화도 있다.

제1·2차 세계대전에 참가한 구르카 용병은 각각 약 20만명, 25만명이다. 두 전쟁에서만 5만명가량 숨졌지만 큰 손실에 비해 영웅적 행동은 눈에 띄지 않은 편이다.

끝나지 않은 전설, 부각되는 차별 대우

구르카 용병의 전설은 현재진행형이다. 2010년 영국군 구르카 용병대를 전역하고 고향으로 가던 비슈느 슈레스타는 열차 안에서 무장강도 40명을 혼자 제압했다. 같은 해 아프가니스탄에서는 구르카 용병 디프라사드 푼이 주둔기지를 공격해오는 탈레반에 기관총으로 맞서 30명을 사살했다. 그는 이 공로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갤런트리 훈장을 받았다.

구르카 청년들의 최대 목표는 영국군 입대시험에 합격하는 것이다. 가장 낮은 계급의 연봉이 한화 약 2600만원으로 네팔 1인당 국민소득(약 400달러)을 크게 웃돈다.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는 용병전문학원이 20곳 넘게 운영되고 있다.

구르카족은 매년 2만8000여명이 영국군에 지원하지만 실제로 입대하는 사람은 한 해 200여명에 불과하다. 입대는 간단치 않다. 시험은 25㎏의 돌을 채운 바구니를 머리에 매달고 가파른 산길 5㎞를 55분 안에 주파해야 하고 2분 안에 윗몸 일으키기를 70번 해야 하는 식이다.

현재 영국 육군 소속 구르카 용병은 3090명으로 정규 보병 병력 2만4000명의 약 13%를 차지한다. 비중은 낮다고 할 수 없지만 1994년 구르카 용병이 1만3000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줄었다. 정부가 관련 예산을 삭감한 탓이다.

가장 많은 구르카 용병을 운영하는 곳은 인도군으로 약 4만2000명 규모다. 1947년 인도가 영국에서 독립할 때 구르카 용병은 양국으로 나뉘었다. 인도와 영국 외에 영국군 소속 부대 전역자들로 구성된 약 2000명이 브루나이에서 특수경비부대로 활동하고 있다. 미군은 바레인 미 해군기지 경비를 구르카 출신에게 맡긴다.

구르카 용병이 세계무대에서 다시금 주목을 받은 싱가포르에서는 1800여명이 경찰 소속으로 치안 업무에 종사한다. 현지 경찰 병력의 15% 정도다. 싱가포르 경찰은 영국군 선발에서 떨어진 차순위자 중심으로 해마다 300명가량 채용하고 있다.

구르카 용병의 활약상 이면에는 차별 대우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구르카 용병에 대한 차별은 영국군 내에서 가장 큰 것으로 전해졌다. 연금 기준으로 영국군이 월 800파운드(약 117만원)를 받는 반면 구르카 용병은 월 37파운드(약 5만5000원)를 받는 데 그친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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