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이상근] 현대차에 엠블럼이 사라졌다 기사의 사진
연구년을 맞아 일본을 다녀왔다. 미국 유학에 앞서 일본에 몇 년간 체류한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일본이 그리 낯설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여전히 연구의 대상이다.

일본차가 국내에서 활개치는 것과 달리 국산차의 일본 내 활약상은 미미하다. 승용차는 찾아보기 어렵고 버스의 경우 아주 드물게 눈에 띈다. 최근 규슈 지역을 여행하면서 탔던 전세버스는 반갑게도 현대차였지만, 어쩐 일인지 버스 전면에서 현대를 상징하고 있어야 할 엠블럼은 페인트칠로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교토에서 마주친 중국 자동차인 BYD의 엠블럼은 현대차와 달리 버스 전면에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일련의 국내 완성차의 위기는 글로벌 판매 실적에서도 나타난다. 2017년,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과 중국에서 현대·기아차의 판매량과 시장점유율이 모두 하락했다. 중국에서는 2017년 판매량이 2016년에 비해 31% 하락했고, 미국에서는 2011년 5.1%의 시장점유율 이후 계속된 하락세를 보였으며 2017년에는 3.9%에 그쳤다. 인도에서는 스즈키의 절반에도 미치는 못하는 16.9%를 차지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2011년 시장점유율이 3%를 넘겼으나 2017년 3.3%로 정체되어 있다. 러시아의 경우 2010년 4.6%의 시장점유율에서 계속된 성장으로 2015년 10%를 넘겼으나 2017년 9.9%로 소폭 하락하면서 주춤하고 있다. 게다가 국내에서 수입차 시장점유율은 2012년 10%에서 2017년 15.2%로 상승했다. 현대·기아차를 포함한 내수 완성차 업체들의 위기가 국내 시장에서도 현실화되고 있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자동차산업의 문제는 한층 복잡하다. 국내적으로는 노조와의 임금 문제로 매년 속앓이를 하고 있지만 국내 공장의 생산성은 임금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수준이다. 현대차 국내 공장의 PHV(자동차 생산 1대당 투입 시간)는 26.8인데 이는 브라질(20.0) 중국(17.7) 미국(14.7) 등 현대차 공장들 중 생산성이 낮은 수준이다. 생산성 대비 국내 공장의 임금 수준이 경쟁국에 비해 높아 최근 한국GM 군산공장 폐쇄 요인의 하나로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국제적으로는 자동차 시장의 패러다임 전환이 현대·기아차에 위기로 작용할 수 있다. 세계 각국은 환경보호에 대한 요구와 필요성이 증가하면서 내연기관의 퇴출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2025년부터 노르웨이와 네덜란드에서 내연기관 판매는 금지되고 2030년 이후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주요국들에서 내연기관이 사라지게 된다. 즉, EV(전기차)와 FCEV(수소전기차)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또한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로 손꼽히는 자율주행, 인공지능 등의 기술과 자동차의 결합은 현재진행형이다.

이러한 경영 환경의 급변에 경쟁자들은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다. 중국 최대 민영 기업인 지리자동차는 2010년에 볼보를 인수한 데다 최근에는 메르세데스 벤츠 모회사인 다임러의 지분 9.69%를 약 9조7000억원에 사들이면서 최대주주가 됐다. 지리자동차는 이를 통해 벤츠 등과 협력해 전기차, 자율주행 등에 더욱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일본은 EV와 FCEV에 집중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미래 에너지를 ‘수소’로 선언하는 등 관련 정책에 힘입어 도요타는 세계 최고 수준의 EV 기술을 보유했음에도 불구하고 FCEV에도 투자해 2014년 12월 수소전기차 ‘미라이’를 출시했다.

자동차산업은 전후방 연쇄 효과가 높은 산업이다. 타이어, 철강 등 부품산업부터 서비스, 전자, 금융산업까지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GM의 철수가 군산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우리 모두가 실감했다. 현대·기아차 위기가 남의 일 같지 않은 이유다. 자동차 시장의 급속한 변혁을 맞아 정부, 기업, 근로자의 긴장된 위기의식이 필요하다. 언젠가 일본을 다시 찾게 되면 엠블럼이 또렷한 위풍당당한 현대·기아차를 만나고 싶다.

이상근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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