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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곡은 시대다] 새 시대 ‘해방정국’에 등장한 이국적 스타

④ 현인 ‘신라의 달밤’(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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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은 ‘야음을 틈타 담을 넘는 도적처럼’ 그렇게 문득 들이닥쳤다. 어느 누구도 일본 제국주의가 그렇게 무력하게 연합군에게 항복하게 될 줄은 몰랐으리라.

하지만 쟁취한 해방이 아닌 주어진 해방이었기 때문에 진정한 독립의 길이 얼마나 고단할 것인지를 실감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항복 직후 아베 노부유키 총독부가 고의적으로 펼쳐놓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경제적 혼란, 그리고 결정적으로 우리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없이 미국 국무성과 소비에트연방 간의 ‘밀고 당기기’에 의해 하룻밤 사이에 그어진 분단의 38선.

미 육군 24군단은 태평양 사령부의 수장 더글러스 맥아더의 포고령 1호 내용처럼 ‘점령군’의 자격으로 총독부 건물을 접수해 아무런 준비 없는 군정을 시작했고, 오하이오주 출신으로 야전밖에 모르던 군단장 하지 중장은 들끓어 오르는 남한 민중의 독립 정부 수립 열망과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일본의 패전일인 1945년 8월 15일부터 남한 단독 정부가 수립되는 48년 8월 15일까지 만 3년에 이르는 이른바 해방정국은 분단과 전쟁, 그리고 극한적인 이데올로기 대립이라는 한반도의 현대사를 결정짓는 비극적인 분수령이 되는 시간이었다. 수많은 미래의 가능성들이 혼란이라는 옷을 입고 순식간에 등장했으며, 이합집산과 좌충우돌을 거듭하며 또한 순식간에 사라져갔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모든 식민지 출신의 독립 정부가 수행해야 될 첫 번째 과제인 식민지 청산이 남한에선 이뤄지지 못했다. 사회주의 북한 정권과의 대치 속에서 미군정과 한반도 남쪽의 권력을 장악하게 될 이승만이 친일 세력을 파트너로 혹은 정치적 기반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 연합팀은 역시 친일 부역의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지주 세력의 이해를 대변함으로써 전체 인구의 70%가 훨씬 넘는 농민들의 숙원인 토지개혁을 간단히 무산시켰고, 일본 자본가들이 물러난 공장들을 장악했다.

따라서 좌우 간의 갈등과 충돌은 필연적이었다. 1945년 12월 모스크바 3상회의를 둘러싸고 찬탁과 반탁의 대립까지는 그렇게 폭력적이지 않았지만, 1946년 대구 인민항쟁을 시작으로 제주 4·3항쟁, 여순 반란사건 같은 굵직한 충돌은 6·25전쟁 전에 이미 수백에서 수만 명의 사상자를 낳은 한국 현대사의 가슴 아픈 비극이 되고 말았다.

소수의 진보적인 작곡가들이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민족음악어법의 수립에 몸부림쳤지만 그들의 아우성은 분단의 엄연한 현실 앞에선 설 자리가 없었다. 친일 음악 엘리트들은 행정부와 교육기관의 권력을 접수했으며, 시장의 영향력을 움켜진 대중음악의 트로트 문법 역시 별다른 심문 없이 그대로 해방정국에 연착륙한다. 이에 실망한 많은 전통음악의 장인들은 월북을 선택하기도 했지만 반제·반봉건의 기치를 앞세운 북한 사회주의 정권 아래서 이들의 미래도 그리 밝지 못했다.

박시춘과 남인수 같은 식민지 시대의 트로트 스타 작곡가와 가수들은 여전히 시대의 파고에 지친 대중의 지지를 한 몸에 받았다. 일본 음악산업 자본의 철수에 따라 음반산업은 식민지 시대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 놓였지만 이들은 악극단을 통한 공연 활동으로 대중과 긴밀한 소통을 나눴다. 여기엔 동시대의 정서를 시의적절하게 반영한 명곡들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낸 트로트 창작자들이 지닌 리얼리즘에 바탕을 둔 시적인 감수성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해방공간은 혁명가 혹은 투쟁가가 봇물을 이루며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노래들이 쏟아진 시대다. 하지만 해방의 기쁨과 미래를 향한 낙관적인 의지를 담은 좌우 진영 모두의 노래들은 거시적 담론에 갇혀 있었으므로, 팍팍한 일상을 위무하고 기쁨과 슬픔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몫은 단연 ‘유행가’라고 불린 대중음악이었다.

해방과 함께 전 국민의 공감을 불러온 첫 히트곡은 ‘나그네 설움’의 작곡가 이재호가 만들고 이인권이 부른 ‘귀국선’이다. 해외 각지에 흩어져 나갔던 이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풍경을 담은 이 노래야말로 대중적 감수성의 ‘해방의 노래’였다. 그리고 뒤이어 식민지 시대의 국민 작곡가 박시춘은 해방공간을 가로짓는 스매시 히트곡을 만드는 동시에 새 시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스타를 발굴해 포스트 식민지 시대에 이르러서도 변함없는 지배력을 행사하게 된다. 바로 ‘신라의 달밤’이라는 노래와 현인(1919∼2002)이라는 신인 가수의 등장이다.

박시춘은 이미 30년대 말에 한국 대중음악사의 초대 가왕 남인수와 더불어 ‘애수의 소야곡’으로 트로트계를 평정하며 조선의 고가 마사오로 불린 인물이다. 고가 마사오는 일본 엔카의 천왕이라고 칭송된 싱어송라이터인데 그가 30년대 초에 만들고 부른 ‘술은 눈물이랄까 한숨이랄까’는 일본 유학파 가수 채규엽이 우리말로 번안해 취입한 적도 있다.

일제 말기 친일 부역의 오점을 남기기도 했지만 해방정국의 혼란과 식민지 청산의 미미한 움직임으로 인해 박시춘의 어두운 경력은 그가 어제의 영광을 이어가는 데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그는 식민지 시대보다 더 큰 영광을 누리게 되었으니, 한 손엔 여전히 남인수를 두고 있는 것에다 현인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다른 손에 장착한 까닭이다.

현인은 학병으로 징집돼 중국 전선으로 투입되던 중 탈영해 상하이 조계(租界·외국인 통치 특별구)에서 숨어 지내다 해방과 함께 귀국했다. 그는 경성 제2고보를 졸업하고 윤심덕과 홍난파 등이 수학한 도쿄의 우에노 음악학원에서 성악을 공부한 인텔리 로맨티시스트이면서 독특한 개성의 발성을 지닌 보컬리스트였다. 박시춘은 현인의 캐릭터에 더없는 궁합을 보일 희대의 걸작을 해방 이듬해에 내놓는다.

‘신라의 달밤’은 서주부터 뭔가 이상한 기운이 아연 감돈다. 이 노래 역시 큰 틀로 보면 단조 트로트이지만 서주부의 리듬과 화성은 지극히 이국적이다. 뭔가 아라비아적인 뉘앙스를 지닌 이 낯선 서주의 리듬 패턴은 스페인 지역의 무곡인 볼레로로, 미군의 진주와 함께 쏟아져 들어온 서구 문화의 소용돌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서주가 페이드아웃 되면서 ‘아∼ 아’ 하는 영탄조의 본론이 시작되는데, 이 주선율부의 리듬 패턴은 언제 그랬냐는 듯 4분의 2박자의 전통적인 트로트 리듬으로 회귀한다. 말하자면 이 노래의 구조는 일본으로부터 영향받은 식민지 시대의 지배적인 음악 패턴과 미군정기의 새로운 서구의 사조가 하나의 몸 안에 혼성모방된 것이다.

이 혼용된 리듬 패턴과 음계 패턴 위로 그 이전의 트로트 보컬리스트에게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현인 특유의 파격적인 바이브레이션이 또한 이 노래를 전통적인 트로트로부터 낯설게 만드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경상남도 동래(지금은 부산) 출신을 숨길 수 없는 경상도 억양의 표출(같은 경상도라도 남인수나 백년설은 발음만으로는 출신지를 알 수 없었다), 과격하고도 분절적인 바이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현인의 톤은 촌스러운 것이 아니라 묘하게 이국적이면서도 세련된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는 이 노래를 시발점으로 50년대와 60년대에 걸쳐 ‘럭키 서울’ ‘비 내리는 고모령’ ‘굳세어라 금순아’ 같은 역사적인 히트곡을 토해냈다. 한결같은 사투리 인토네이션에도 불구하고 토속적인 정감보다는 트로트를 통해 서구적 감수성을 엿보게 하는 새로운 울림의 질서를 만들었다.

동서를 가로지르는 이 독특한 울림은 아마도 발작적인 일제 말기에 탈영병의 신세로 보낸 상하이 조계에서의 경험에서 배태된 것이 아닐까 싶다. 상하이는 다양한 유럽의 문화가 정박하고 있던 서구문화의 기항지 같은 곳이었다. 이 식민지 청년은 이 익명적인 대도시의 뒷골목에서 그만의 감수성을 무의식적으로 배양했다. 막 눈을 뜨던 중국의 신문화, 그리고 제국 일본의 문화, 그리고 날이면 날마다 새로이 투하되는 서구의 문화가 다양한 방식으로 조우하고 헤어지는 그 문화적 해방구에서 말이다.

특히 그가 번안해 부른 ‘베사메 무쵸’나 그의 50년대 후반작인 ‘꿈속의 사랑’(역시 번안곡이다)과 탱고 리듬의 ‘서울 야곡’에 이르면 이국적 낭만주의의 향기가 성숙하게 발효되는 진경이 펼쳐진다. 분단과 전쟁이 낳은 폐허의 가난 속에서, 그리고 뿌리 뽑힌 이산과 강퍅함 속에서 그는 전시 낭만의 꽃을 홀로 황홀하게 피웠다고 할 수 있겠다.

박시춘과 콤비를 이룬 ‘신라의 달밤’은 식민지 시대의 애수와는 길을 달리하는 가난하지만 견고한 근대적 낭만성의 효시이다. 그리고 해방의 공간에서 등장한 현인이라는 새로운 캐릭터는 식민지의 연장선에 놓여 있으면서 서구적 근대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이행하는 과도적 시대를 상징하는 아름다운 캐릭터였다.

<강헌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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