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장윤재] 아빠 아버지 기사의 사진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사도신경 첫 구절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천지를 지은 전능한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된다는 고백이다. 보통 모든 종교에서 신은 세상을 창조하고 통치하는 전능한 존재다. 그런데 기독교는 하나님이 그런 초월적인 존재이기 이전에 우리의 ‘아버지’와 같은 존재라고 고백한다.

예수님은 이런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불렀다. 십자가형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핏방울같이 땅에 떨어지도록 간절히 기도할 때에 이렇게 기도하셨다.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가복음 14:36) 한국어에서 ‘아버지’는 자신에게 혈통을 직접 이어 준 남자를 가리키거나 부르는 말이다. ‘아빠’는 어린 아이의 말로 아버지를 정답게 이르는 말이다. 한국어나 예수님의 모국어인 아람어에서 ‘아빠’가 같은 뜻의 똑같은 발음이라는 사실이 매우 놀랍다. 예수님에게 하나님은 바로 이렇게 정답고 친밀한 존재였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아빠 아버지’가 우리의 ‘아빠 아버지’가 된다는 것을 강조한 이는 사도 바울이다. 그가 로마에 있는 교회에 보낸 서신이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영으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로마서 8:14∼15, 새번역) 다른 편지에서도 그는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은 자녀이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하셨습니다.”(갈라디아서 4:6∼7, 새번역) 실로 이 세상의 수많은 종교 가운데 하늘 높이 계신 위대한 신을 ‘아빠’라 부르고 우리가 그의 사랑받는 자녀라고 말하는 종교는 기독교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을 ‘남성’ 하나님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하나님이 생물학적으로 남성이라면 그리고 여성이라 할지라도 그 분은 신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이유는 그의 성(性, sex)이 남성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시는 일(work)이 아버지와 같기 때문이다. 옛날 권효가(勸孝歌)에 “아버지 나를 낳으시고”라는 말이 있듯이, 과거 가부장 사회에서 자녀를 낳고 기르는 부모의 역할은 ‘아버지’로 대변됐다. ‘아버지’는 하나님에 대한 직유(直喩)가 아니라 은유(隱喩)인 것이다. 우리는 모든 종교적 언어를 은유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를 문자적으로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을 남성처럼 생각하게 되고 그 결과 여성차별주의를 교회 안에 용인하게 된다. 유명한 여성철학자 메리 데일리(Mary Daly)는 이렇게 경고한 적이 있다. “만약 하늘에 있는 신이 [남성] 아버지라면, 땅에 있는 [남성] 아버지가 신이 된다 [신처럼 군림한다].”

성서 안에는 하나님을 여성적인 은유로 묘사한 부분도 여럿 있다. 이사야서 42장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숨이 차서 헐떡이는, 해산하는 여인’으로 비유하며 고통 받는 이스라엘 백성을 평탄한 길로 인도하겠다고 약속한다.(이사야 42:14, 16)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버리고 잊으신 것이 아니냐고 이스라엘 백성이 한탄할 때 하나님은 자신을 ‘젖먹이는 어머니’에 비유하며 그들을 절대 잊지 않겠다고 약속한다.(이사야 49:15) 그리고 신약성서에서 예수님은 앞으로 로마의 침공으로 멸망할 예루살렘을 보고 눈물을 흘리시며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에 품듯이, 내가 몇 번이나 네 자녀들을 모아 품으려 하였더냐!”(마태복음 23:37, 누가복음 13:34)고 한탄한다. 이렇듯 성서 안에서 하나님은 여성과 어머니의 이미지로도 자신의 사랑과 자비와 구원의 약속을 선포한다.

우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갈라디아서 3:28)인 것이다. 여성차별주의와 기독교신앙은 결코 양립할 수 없다.

장윤재 이화여대 교목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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