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조상열] 문화재지킴이를 아시나요 기사의 사진
문화재를 지키는 일은 문화재에 담긴 의미와 가치를 활용하고자 하는 데 이유가 있다. 문화재지킴이 운동은 소중한 문화재를 지키고 가꾸자며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1990년대 시작됐다. 2005년부터는 문화재청의 ‘1문화재 1지킴이 운동’으로 발전했고, 현재 전국 각지에서 8만4000여명의 문화재지킴이들이 활동한다. 문화재를 지키는 사람들의 연합체인 한국문화재지킴이단체연합회는 문화재청과 함께 22일을 ‘문화재지킴이의 날’로 제정·선포했다. 이 날짜는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전주사고에 보관된 실록이 전화(戰禍)로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전북 정읍의 선비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낸 날이다. 문화재지킴이 활동에 가장 본보기가 되고 상징적 의미가 있는 날이다.

당시 상황은 급박했다. 임진왜란으로 성주사고, 충주사고, 춘추관 등에 보관해 왔던 ‘조선왕조실록’은 소실됐다. 경기전의 전주사고본도 위태로웠다. 왜군은 전주를 공격 목표 삼아 금산까지 진입해 왔기 때문이다. 전주사고에는 ‘조선왕조실록’ 800여권을 비롯해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 국가적으로 중요한 서적이 보관돼 있었다. 경기전은 태조의 어진도 봉안된 중요한 장소였다. 그날 6월 22일, 정읍의 선비 안의와 손홍록은 실록을 전란의 위기로부터 구출하고자 가솔을 데리고 전주사고로 달려갔다. 그러곤 궤짝 64개에 보관된 실록을 정읍 내장산 용굴암으로 옮겼다. 전세가 악화되자 더 깊은 산속인 은봉암, 비래암 등으로 옮겨갔다. 이듬해 7월 9일까지 380여일 동안 지켰고, 이를 ‘수직일기(守直日記)’로 남겼다. 두 사람은 실록이 익산과 아산, 인천을 거쳐 강화부까지 옮겨질 때도 사재를 털어가며 동행했다. 조선의 진정한 문화재지킴이이자 애국의사(義士)였다.

‘조선왕조실록’은 1997년 훈민정음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됐다. 조선의 ‘문화재 영웅’ 안의와 손홍록이 없었다면 이런 영광은 불가능한 일이다. 오늘날 우리가 조선 역사를 세세히 알 수 있고 세계 속에 문화적 자긍심을 가질 수 있음을 생각하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2008년 2월 8일, 숭례문이 방화로 불에 타는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 조선 초에 세워져 610년 동안 조선시대 양란과 한국전쟁 때도 꿋꿋이 견뎌낸 목조건물이었는데 순식간에 전소되는 장면을 TV로 지켜본 국민은 그 충격을 잊지 못한다. 문화재는 조상들의 예지와 숨결이 깃든 생생한 역사요, 인류문화 자산이다. 문화재의 주인은 나라이자 국민인 것이다. 문화재를 통해서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살아있는 현재가 된다. 또 미래의 희망이 된다. 때문에 조상들이 남겨 놓은 문화재를 온전히 후대에 물려주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역사를 보면 모든 국난 상황에서 나라를 구하고 역사를 지킨 사람들은 민초들이었다. 국난 때마다 스스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일어선 민간인을 ‘의병’이라 할 때, 문화재를 지키는 민간인을 ‘문화재 의병’이라 부를 수 있다. 따라서 문화재 의병 안의와 손홍록을 기리며 ‘문화재지킴이 날’을 제정한 것은 민간이 참여해 문화재를 지킨 역사성과 그 정신을 본받아 문화재 보존을 국민 참여형 운동으로 확산하자는 데 목적이 있다. 문화재가 잘 가꿔지고 온전히 보존되는 세상이 더 가까이 오길 바란다.

조상열 한국문화재지킴이단체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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