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취’ ‘취존’… 지금 SNS엔 ‘취향 드러내기’ 놀이 기사의 사진
영화·소설·게임 등 다양한 장르 망라
전문가 평가 아닌 자신만의 작품 선정…서로 문화 콘텐츠 공유하며 공감·동조
“더 깊은 소통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단편적인 보여주기 머물러” 비판도


요즘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문화적 취향을 드러내는 ‘10작품 놀이’(#○○_10작품으로_취향을_드러내자)가 유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영화 10작품 놀이는 ‘#영화_10작품으로_취향을_드러내자’ 아래 자기가 좋아하는 영화 10편의 제목을 쓰는 방식이다. 장르는 영화 소설 만화 음반 드라마 게임 등 여러 문화 콘텐츠를 아우른다.

A씨는 최근 페이스북에 이 방식에 따라 영화 10편의 제목을 올렸다. ‘인생은 아름다워’ ‘비포 선라이즈’ ‘존 말코비치 되기’ ‘비긴 어게인’ ‘이웃집 토토로’…. 그는 이 목록 뒤에 “요즘 유행하는 영화 10작품으로 취향을 드러내기인데 10편만 고르기는 정말 어렵다”며 “내 취향은 에단 호크, 미셸 공드리, 그밖에 잔잔한 크리에이티비티(독창성)”라고 적었다.

A씨처럼 자기가 즐기는 문화 분야에서 10개 작품을 골라 ‘개인의 취향’을 드러내는 이들이 많다. 어떤 이들은 여러 장르를 한꺼번에 올린다. B씨는 소설, 영화, 음반 3개 분야에서 고른 10작품씩을 올렸다. 소설의 맨 위에는 김승옥의 ‘서울, 1964 겨울’, 영화 1순위에는 홍상수의 ‘북촌방향’, 음반에는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를 넣었다.

작가인 C씨는 소설 10편을 고른 뒤 자신이 받은 문학적 영향을 메모했다. 스탕달의 ‘적과 흑’에 대해선 “어린 시절 내 로맨스 상대를 형상화해준 작품. 나는 혁명적 불나비인 나쁜 남자를 좋아했어. ㅋㅋㅋ 스탕달이냐 발자크냐 하고 만고 쓸데없는 싸움도 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소설 열심히 읽던 시절엔 한 편 읽고 나면 인생관이 바뀌곤 했다”고 했다.

D씨는 ‘스타크래프트2’ ‘창세기전2’ 등 좋아하는 게임 10가지를 나열한 뒤 “게임과 영화의 경계를 허문 대작” “게임계 수작이고 스토리도 감동적” 등의 간명한 평가를 덧붙였다. 만화 10작품을 올린 경우도 많은데 ‘슬램덩크’ ‘짱구는 못말려’ ‘드래곤볼’ 등 특정 시점에 유행한 작품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이런 글에 대한 반응은 대개 공감과 동조로 나타난다. K씨는 A씨 글에 “(좋아하는 영화가) 비슷해 나랑”이라고 말한다. L씨는 B씨에게 “이거 나도 해봐도 돼?”라고 묻고 B씨로부터 “해시태그 놀이에 허락을 받다니”란 답을 받는다. M씨는 C씨의 목록에 대해 “나도 청소년기에 ‘몽테크리스토 백작’과 ‘작은 아씨들’을 재밌게 읽었다”며 “어릴 때 읽은 주인공은 거의 실제 인물처럼 기억에 존재한다”는 댓글을 남겼다. 10작품 놀이는 이런 형태로 SNS에서 많은 공감을 받으며 널리 퍼져 나가고 있다.

10작품 놀이는 SNS 유저들이 취향을 공유하며 서로 공감하는 통로가 되면서 SNS의 장을 내용적으로 풍부하게 만든다. 전문가들은 이 놀이의 유행이 취향을 중요시 여기는 요즘 세대와 SNS의 매체 특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본다. 문화평론가 김헌식은 “‘개취(개인취향)’ ‘취존(취향존중)’이라는 줄임말에서 보듯 요즘 세대는 전문가의 평가에 기대지 않고 자기 기준에 따라 콘텐츠를 평가하고 자기 취향을 자신 있게 드러낸다”며 “비슷한 문화적 취향을 가진 사람들과 유대감을 갖고 싶은 욕구, 즉 ‘문화부족’을 형성하길 원하기 때문에 자기 목록을 공개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공감과 소통을 원하는 인간의 보편적 요구라는 해석인 셈이다. 문화평론가 하재근도 “과거 주변 친구들과 나누던 이야기를 이젠 사람들이 SNS에 올리고 있다”며 “소통을 원하는 SNS 유저들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공감하고 따라 하기 때문에 유행이 유행을 낳게 되는데, 10작품 놀이가 대표적 사례”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놀이도 결국 단편적인 보여주기일 수 있다. 김헌식은 “10작품 놀이가 더 깊은 소통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나는 이 정도의 문화 콘텐츠를 즐긴다’는 것을 단순히 과시하는 수준에 머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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