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시온의 소리] 영적 투혼부터 회복하자

[시온의 소리] 영적 투혼부터 회복하자 기사의 사진
두어 달쯤 됐을까. ‘세기의 가왕(歌王)’ 조용필 데뷔 50주년을 맞아 축시를 하나 써서 보낸 적이 있다. 그랬더니 그분이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리는 50주년 콘서트 VIP 티켓을 보내왔다.

생전 처음으로 조용필 콘서트에 가봤는데 정말이지 가왕은 가왕이었다. 나 역시 수십만명이 모인 연합집회를 비롯해 많은 매머드급 집회에서 설교해 봤지만 과연 그분은 명불허전이었다.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한 당시에는 5만명이 모이는 평화기도회 준비위원장을 맡고 기도회를 인도했는데 그때의 기도회와 조용필 콘서트가 내 머릿속에 자꾸 오버랩됐다.

조용필 콘서트는 폭우가 내리는 가운데서도 5만명 넘는 군중이 올림픽주경기장을 꽉 채웠다. 그들은 강제로 동원된 사람들이 아니라 자기 돈 내고 자발적으로 모여든 사람이다. 게다가 한 사람도 가지 않고 끝까지 우비를 입은 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열광하며 괴성을 지르고 춤을 추는 게 아닌가.

그들을 그처럼 흥분시키고 열광케 한 것은 가왕의 예술혼이었다. 조용필 역시 나약한 인간이었지만 무대에 섰을 때는 감성의 우상이고 하나의 예술적 종교였다. 그만큼 조용필은 빛나는 예술적 투혼으로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거기서 문득 나를 비롯한 이 시대의 목회자와 한국교회의 현주소를 봤다. 옛날 선대 목회자들은 헝그리 정신을 갖고 죽느냐 사느냐 목숨을 걸며 ‘타이거 스타일’ 목회를 했다. 성도들도 눈물을 쏟으며 기도하고 죽기 살기로 은혜를 받으려 했다.

조용필 역시 가왕의 자리에 오르고 또 그 자리를 지키기까지 외로운 사막을 끝없이 걸으며 은둔과 고독의 시간을 보내지 않았겠는가. 그는 방송활동을 하지 않을 때도 하루도 빠짐없이 오전 내내 자기 집 지하실에서 노래를 부르고 저녁에도 또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한 곡을 발표하기 위해 1000번 이상을 연습한다고 한다. 콘서트를 앞두고는 누구도 만나지 않고 계속 노래에 파묻혀 외로운 광인처럼 산다고 한다.

그런데 경제가 발전하고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서면서 우리는 허리띠를 졸라매며 신앙혼을 놓쳤다. 북유럽 사람들처럼 삶을 관조하고 즐기며 여유 있게 살려는 ‘스칸디 스타일’이 돼 버렸다. 그러면서 이 시대의 사상과 정신, 일반 대중을 이끌어가는 능력도 잃어버렸다. 로켓이 대기권 밖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의 엔진을 분리시키고 다른 새 엔진에 점화시켜야 하듯 우리 역시 기존 매뉴얼만 작동시키는 사역을 넘어 우리의 심장에 새로운 영적 투혼의 불을 붙여야 한다.

새로운 시대 변화와 흐름을 읽지 못하고 현대인의 우상 심리와 정서적 갈망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도 괴성을 지르며 성령대망집회를 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회를 이끌 수 있는 영적인 내공과 투혼이 내게 있는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복음이 있는데도 왜 시대와 대중을 감동시키지 못하는가.”

어느 역사를 보든 한 국가나 공동체의 지도자들이 영적인 투혼과 초심의 영성을 잃어버리면 내분만 일어나고 자기 명예를 위한 기득권 싸움에 빠진다. 우리 역시 초심의 혼과 영적인 투혼을 잃어버려 분열하고 기득권 싸움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 싸움의 대상은 마귀요 이단이며 반기독교 세력과 사상인데 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바벨탑의 욕망의 포로가 돼 서로 싸우며 도토리 키 재기를 하고 있는가. 이런 우리가 어떻게 시대를 감동시키고 대중을 이끌어 가겠는가.

이제라도 영적인 투혼과 초심을 회복하자. 우리 안 심연의 극지 속으로 가자. 사람의 발자국 하나 없는, 아니 꽃 한 송이도 없는 그 영혼의 목마른 사막 끝으로 가서 다시 영적 투혼의 불씨를 살려보자. 그렇지 않으면 다음세대도 없다.

소강석(새에덴교회 목사)

신청하기

국내외 교계소식, 영성과 재미가 녹아 있는 영상에 칼럼까지 미션라이프에서 엄선한 콘텐츠를 전해드립니다.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