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이진우] 좀비가 된 보수 정당 기사의 사진
보수 정당이 보수적 가치와 세력을 대변하지 못한 채
연명만을 위해 권력을 좇고 의제 설정도 못하고 있다
반동적 수구가 제대로 죽어야 보수가 살 수 있다
그래서 합리적·이성적인 사람들이 지지하게 만들어야 한다


죽어도 죽지 못하는 존재를 좀비라고 한다. 여름철 더위를 식히기 위해 많이 찾는 호러 영화의 한 장르로 좀비는 자리를 잡았다. 죽었음에도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돌아다닌다. 아홉 시즌을 거듭할 정도로 인기 있는 미국 드라마 ‘워킹 데드’처럼 좀비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 ‘죽은 자’가 아니라 좀비로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생존 방법이다. 어찌 보면 죽은 자들이 제대로 죽지 않고 산 사람처럼 돌아다니는 것이 문제일지도 모른다. 죽은 자들이 완전히 죽지 않으면 산 자들도 올바로 살 수 없다는 교훈을 좀비 영화는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6·13 지방선거는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으로 대변되는 보수 정당을 좀비로 만들었다. 보수 정당은 대구·경북·제주를 제외하고 단 한 곳도 광역단체장을 당선시키지 못했다. 광역의회에서조차 최소한의 견제도 불가능한 의석에 그쳤다는 것은 보수 정당이 그야말로 괴멸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역구 서울시의원 100명 중 3명, 경기도 도의원 129명 중 단 1명만이 자유한국당이라는 것은 보수 정당에 사망선고를 내렸다 해도 과언이 아닌 수치다. 보수 정당은 말 그대로 죽은 것이다.

죽음에 가까워졌다는 진단은 이미 오래전에 내려졌다. 민주화 역사를 뒤로 돌리고 박정희 시대의 권위주의로 회귀하려 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었을 때 보수 정당은 이미 대한민국의 뿌리 깊은 보수 세력을 대변하기를 포기했다. 보수 정당이 건강한 보수 세력을 대변하지 않고 오직 권력에만 집착한다면 그 생명은 이미 끝난 것이다. 문제는 보수 정당이 죽었다 해서 보수 세력이 죽은 것은 아니라는 데 있다. 보수적인 시민들이 하루아침에 진보적으로 바뀔 리는 만무하다. 그렇다면 합리적 보수 세력을 대변할 수 있는 보수 정당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

반동적 수구 정당은 죽는 게 옳다. 그것도 제대로 죽어야 한다. 좀비가 완전히 죽어야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생명의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처럼 반동적 수구 정당이 제대로 죽어야 건강한 보수 세력이 살아남을 수 있다. 그렇다면 죽어도 죽지 못하는 좀비가 제대로 죽을 수 있을까. 좀비는 세 가지 특성을 갖고 있다.

첫째, 좀비는 모든 이성과 의식을 상실한 채 마지막 욕망인 식욕만 있다. 좀비는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물어뜯는다. 그렇게 세상을 감염시킨다. 국민이라는 낱말을 가장 많이 입에 올렸음에도 정작 국민은커녕 보수조차 대변하지 않은 보수 정당이 그 모양이다.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려면 물론 권력이 필요하지만 권력을 위해 국민을 이용한다면 수구 정당이 된다. 보수 정당은 우선 어떤 보수적 가치를 대변하는지 치열한 논쟁을 통해 보여줘야 한다. 보수의 이념과 가치, 그리고 정치적 방향을 생각하지 않고 권력의 욕망만 좇는다면 좀비와 다를 바 없다.

둘째, 호러 영화에 나오는 좀비는 떼로 몰려다닌다.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시체처럼 보이는 좀비는 개인과 개성을 허용하지 않지만 공동체도 구성하지 않는다.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는 현수막을 내걸고 무릎을 꿇으면서도 여전히 서로가 서로에게 보수 몰락의 책임을 떠넘기면서 친박과 비박의 싸움을 계속하는 것을 보면 보수 정당이 죽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해 보인다. 그들은 기득권을 연명하려는 것이다. 반성의 코스프레는 별로 효과가 없는 연명 수단일 뿐이다. 보수 정당이 제대로 죽으려면 우선 당내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 힘센 사람을 중심으로 우르르 몰려다니는 떼거리 정치문화를 개선하지 않으면 이 땅의 보수 세력은 결코 보수 정당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셋째, 좀비는 주위 환경에 반응할 뿐 능동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소리와 빛이 있는 곳으로 좀비들은 몰려든다. 이번 지방선거의 가장 핵심적인 패인은 보수 정당이 스스로 이슈를 만들어 내거나 의제를 설정하지 못하고 끌려다니 듯이 막말로만 반응한 데 있다. 보수 정당은 남북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급변하기 시작한 한반도의 정세나 글로벌 무역전쟁 또는 경제지표의 악화 등에 어떤 대안도 제시하지 못했다. 국민이 경험한 것은 당 대표와 대변인의 형편없는 막말뿐이었다. 국민의 수준을 우습게 본 것이다.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면서 남의 목소리에 반응만 하는 것은 죽은 것이다.

한국의 보수 정당은 사실 죽었음에도 제대로 죽지도 못하고 있는 꼴이다. 건강한 보수 정당으로 다시 태어나려면 반동적 수구와 동일시되는 정치인은 모두 물러나고 치열한 내부 논쟁을 통해 보수의 방향을 새롭게 설정해야 한다. 그것만이 좀비 상태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다.

이진우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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