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주의 작은 천국] 동백 아가씨

[김선주의 작은 천국] 동백 아가씨 기사의 사진
우리 교회 교회학교 6학년 신민서 학생(왼쪽)은 삶으로 하나님을 느끼게 하고 싶은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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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살 무렵이었을 게다, 중학교 2학년이었으니까. 공부하고는 인연이 없는 친구 하나가 있었다. 초등학교 졸업 무렵에서야 한글을 겨우 깨쳤지만 공부 외에는 모든 걸 잘하는 친구였다. 어느 날 녀석이 내 옆구리를 찌르듯이 팔짱을 끼고 들어와 천둥 같은 소리를 한다.

“야, 동백꽃 죽이지 않냐?” “동백꽃, 뭐가?” “이 샌님아 생각 좀 해 봐. ‘헤일 수 없는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 아가씨,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이미자의 노래 ‘동백 아가씨’를 설익어 떨떠름하고 달착지근한 살구 맛 같은 변성기의 목소리로 부르지 않았더라면, 대단한 시 한 편을 낭송하는 줄로 착각했을 것이다. 이미자는 아버지 세대의 가수였다. 그런 가수의 노래를 눈까지 지그시 감고 걸쭉하게 부르는 녀석은 이미자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런데 녀석이 이미자의 팬이었다는 사실보다 더 충격적인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충분히 맛본 다음에야 그 깊이를 알 수 있을 법한 곡조와 노랫말의 속뜻을 깊이 헤아리고 있었다. 녀석은 이미자뿐만 아니라 문주란, 패티김, 김추자 같은 가수들의 노래도 입에 달고 다녔다. 돌아보건대 녀석은 지독히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그가 살고 있는 몇 가구 안 되는 산골마을의 이웃들은 가난과 분쟁, 투병과 죽음, 상처와 고독, 떠남과 돌아옴 등과 같은 진흙 구덩이였다. 녀석은 그 무정형의 점액질 구덩이 속을 헤엄치며 이미자와 패티김, 문주란, 김추자들을 만났던 것이다.

녀석이 인생을 알아버린 어린 나이에 나는 오히려 인생을 잃어버리고 있었다는 또 하나의 충격적인 사실에 눈떴다. 녀석이 이미자를 통해 인간과 세계를 향해 이해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을 때 나는 교회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비세속으로 타자화되고 있었다. 녀석이 ‘동백 아가씨’를 통해 생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며 달달하고 쌉쌀한 존재의 맛을 느끼고 있을 때 나는 “예수 믿고 왕자 됐네, 왕자 됐어” “햇빛보다 더 밝은 곳 내 집 있네”와 같은 류의 상투적 초월 세계를 경험하고 있었다. 녀석과 나의 삶이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느낀 순간, 교회학교 학생으로 머물러 있는 유치하고 옹졸하기 그지없는 자화상을 보게 된 것이다.

녀석이 인생과 세계를 들여다보고 있을 때 나는 개역성경의 딱딱한 의고체 문장을 기계적으로 암송하고 있었다. 녀석이 삶의 깊은 곳을 헤엄치고 있을 때 나는 지상의 삶과는 무관한, 천상의 이야기가 담긴 찬양곡들을 부르고 있었다. 교회학교가 천상의 하나님을 통해서만 내 삶을 바라보도록 강요했기 때문이다. 교회는 지상의 시선으로 나 자신을 보지 못하게 했다. 나는 지상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바라보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교회학교는 세상에 대한 무관심이 올바른 신앙이라고 가르쳤다. 때문에 나는 교회와 세상, 하나님과 인간, 죄와 속죄 등과 같은 이분법적 도식의 경계를 넘어설 수 없었다. 이별의 정한과 슬픔, 노동의 고단함과 죽음의 깊이, 아픔의 질감 같은 인간의 문제들을 마주볼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 교회 교회학교 6학년 민서는 여름방학마다 성경학교 대신 양계장에서 닭똥 치우는 일을 주로 하는, 청소년 캠프를 선택한다. 나는 성경학교 대신 그 캠프를 선택한 민서를 마음 깊이 사랑하고 응원한다. 민서가 닭똥 냄새 속에 비지땀을 흘리며 삶의 깊숙한 곳에서 또 하나의 ‘동백 아가씨’가 되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에 대한 이해는 삶의 지평 위에서 열릴 때 가장 아름답기 때문이다.

<영동 물한계곡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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