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정승훈] ‘민방위 대장’ 조은희 구청장 기사의 사진
지방선거 당일이던 지난 13일 온라인에선 댓글 설전이 밤새 계속됐다. 조은희 서울 서초구청장이 중심에 있었다. 재선 가능성에 대한 예측은 엇갈렸다. 접전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판도가 조 구청장에게 유리해졌다. 그러자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팬들이 많다는 ‘친노·친문’ 커뮤니티에서 고백이 줄을 이었다. ‘한 번도 자유한국당 계열 후보에게 투표한 적 없지만 이번 구청장 선거에서 조 구청장을 찍었다’는 식이었다.

선거 홍보물이 압도적으로 훌륭했다거나 육아맘, 장애인 유권자의 마음을 확실히 잡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서리풀 오두막’ ‘늘봄 카페’ 등 생활밀착형 정책에 대한 칭찬도 이어졌다. 인상적이었던 건 남성 회원 비율이 높다는, 소위 ‘남초(男超)’ 커뮤니티에서 나온 ‘민방위 대장 조은희’ 얘기였다.

‘민방위 훈련장에서 민원을 듣고 현장에서 조치하더라’거나 ‘본인 연락처를 공개하기에 사진 찍어서 문자 보냈더니 해결되더라’는 식의 증언이었다. ‘구청장이 민방위 훈련장에는 왜 가나’라거나 ‘민방위를 정치적으로 활용한 것 아니냐’는 비판성 글이 올라오자 댓글이 줄을 이었다. ‘정치색 같은 건 1도 없다’ ‘시큰둥하던 아저씨들도 한두 사람 답변 받는 거 보면 너도나도 질문한다’ ‘졸기만 하는 민방위만 봤는데 퍽 신기한 경험이었다’ 등의 재반박이었다.

1년여 전 이 같은 상황을 감지했다. 지난해 3월 조 구청장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였다. 그는 민방위 훈련장에서 20대 후반∼40대 초반 연령의 남성들과 나누는 대화에 대해 설명했다. 아이 키우는 엄마의 마음은 잘 안다고 생각한다.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의 심정도 공감할 수 있다. 장년 이상 어르신들의 고민도 이해한다. 그런데 젊은 남성들이 뭘 생각하는지, 무엇이 불만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래서 계속, 꾸준히 들어보려고 한다….

그가 민방위 훈련장에서 마이크를 잡은 첫 여성 구청장은 아니었다. 그보다 앞서 민방위 훈련장에 나섰던 인근 지역 여성 구청장은 설화와 논란만 양산했다. 이 사실을 익히 알고 있던 서초구 민방위 대원들은 조 구청장이 나타났을 때 처음엔 시큰둥했다. 구의 간부들도 ‘돌발 상황이 생길 수 있다’거나 ‘(정치적으로) 리스크가 크다’고 만류했다.

실제 초반엔 공격적인 단어를 사용하며 의도적으로 시비를 거는 듯한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조 구청장은 “그렇게 말씀하시니 무섭다”고 한 발 물러나며 분위기를 누그러뜨렸다. 구의 한 간부는 “‘여장부’로만 생각했는데 그게 전부는 아니더라”고 했다. 과감한 결단력과 똑 부러지는 논리를 갖춘 조 구청장이 자칫 참석자들과 설전을 벌일까 우려했는데 기우였다. 조 구청장이 “무섭다”고 하자 다른 참석자들은 모두 공격적인 단어를 사용한 대원을 힐난하듯 응시했고, 곧 분위기는 정리됐다.

조 구청장은 “여러분만큼 주변의 안전 문제를 잘 아는 분이 없다”고 의견을 구했다. 반사경이 필요한 주거지 인근의 좁은 도로나 망가진 과속방지턱, 붕괴 가능성이 있는 축대 등에 대한 제보가 쏟아졌다. 민방위 대원들은 모두 관내의 안전 위협 요소들을 미리 찾고 조치하는 요원으로 변했다. 구가 내세운 ‘안전 1번지, 서초’라는 타이틀은 주민들이 참여하는 구호가 됐다. 서초구는 서울시의 ‘민방위 비상대비 업무 분야’ 평가에서 2년 연속 대상을 받았다.

이번 선거에서 경북 청송 출신이라는 이력은 득표에 큰 도움이 되기 어려웠다. 자유한국당 소속이라는 점은 마이너스 요인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서울 25개 구 가운데 유일하게 한국당 소속으로 당선됐다. 2위보다 2만5000여표를 더 얻은 그의 당선에는 대개 진보적 성향으로 분류되는 청·장년 남성들을 지지자로 만든 것이 큰 역할을 했다. 마음 씀씀이로 주민들에게 다가간 정책과 단체장의 태도는 출신 지역이나 소속 정당보다 훨씬 더 큰 힘을 발휘했다. 조 구청장의 재선이 의미 있다고 평가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정승훈 사회2부장 s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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