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라동철] 소득주도 성장론을 위한 변명 기사의 사진
“왜 나만 갖고 그래∼.”

1980년대 인기를 끈 MBC 예능 프로그램 ‘일요일밤의 대행진’에서 개그맨 최병서가 빅히트시킨 유행어다. 당시 최씨는 정치인 성대모사 코너에 등장해 5공 비리와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던 전두환 전 대통령을 그의 말투를 빌려 신랄하게 풍자했다. 전 전 대통령은 5공의 몸통이었기에 이 유행어는 그의 뻔뻔함을 극명하게 드러내 준 촌철살인이었다.

다시금 이 유행어를 떠올리게 된 건 문재인정부의 핵심 경제정책 기조인 소득주도 성장론 때문이다. 물론 전 전 대통령의 경우와는 정반대 이유에서다. 소득주도 성장론은 저소득계층의 가계소득을 높여 소비를 촉진시킴으로써 내수 활성화 및 경제 성장을 추구하자는 것으로,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리겠다는 것이 핵심 정책이다. 정부는 이에 따라 올해 최저임금을 전년보다 16.4% 많은 시급 7530원으로 인상했다.

그러나 올 들어 주요 경제지표들이 악화된 것으로 나타나는 등 기대했던 것과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 통계청의 올해 1분기 가계동향 조사 결과를 보면 하위 20% 가구의 소득이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8% 하락했고, 소득 상위·하위 20%의 가처분소득 격차는 5.95배로 역대 최고였다. 취업자 수 증가폭도 지난 5월 7만2000명으로, 8년4개월 만에 최저로 떨어지고 청년실업률은 10.5%로 역대 최고였다. 도소매업이나 숙박음식업 등 단순노동 근로자의 일자리는 감소했다. 고용은 물론 소비·투자에 이어 소비자심리까지 급락하는 등 주요 경기지표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소득주도 성장론, 특히 최저임금 대폭 인상에 책임을 돌리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런 비판은 온당한 것일까. 최저임금 두 자릿수 인상의 부작용이 노출됐지만 현 경제 상황을 그 탓으로만 돌리는 건 지나친 비약이다. 조선·자동차 등 주력 산업의 경쟁력 하락 및 업황 부진, 자산 불평등에 따른 소득 양극화 심화, 치솟는 임대료, 과포화 상태인 자영업 시장 등 고용과 가구 소득에 악영향을 미치는 다른 요인도 많다. 그런데도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만을 집중 부각시키고 있으니 ‘왜 나만 갖고 그래’라는 이유 있는 항변이 나올 법하다.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을 판단하기에는 이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최근 발표한 ‘2018 한국경제 보고서’에서 최저임금 추가 인상 규모 결정에 신중해야 한다고 했지만 최저임금 인상과 사회지출 확대가 가계소득 증대와 민간소비 증대에 기여할 것으로 내다봤다.

최저임금은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임금을 법으로 보장하는 제도다. 최저임금이 올라가면 저소득 근로자들이 혜택을 보게 되는 건 분명하다. 문제는 부작용을 완화할 대책들이 제도 미비나 정책 의지 부족 등으로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최저임금 인상의 충격이 영세 소상공인에게 주로 전가되는 건 부당하다. 경제 주체들이 충격을 나눠서 흡수해야 소득주도 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기대할 수 있다. 대기업과 프랜차이즈 본사의 갑질 근절, 임대차보호법 개정을 통한 급격한 임대료 인상 억제, 일자리안정자금 등 정책적 지원 확대 등이 함께 가야 한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한 기업의 과감한 투자, 이를 유인해낼 정부의 규제 완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격차 축소, 실직의 충격을 완화할 사회 안전망 확충도 빼놓을 수 없다. 기업은 갈수록 부자가 되는데도 서민 가계는 점점 쪼들리는 불균형도 개선해야 할 대목이다. 금융·부동산 소득에 대한 누진과세 강화 등 증세를 통해 정부의 재정지출 여력도 늘릴 필요가 있다.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지적은 귀담아 들어야겠지만 우리 경제 위기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소득 양극화를 해소하고 지속 가능한 경제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보다 넓고 열린 시각으로 우리 경제 시스템의 재구조화를 고민해야 할 때다.

rdch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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