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지호일] ‘좋은 재판’으로의 길 기사의 사진
“저는… 좋은 재판을 하고 싶었습니다.” 2003년 8월 13일 박시환 서울지법 부장판사가 기자들 앞에서 끝내 굵은 눈물을 떨궜다. 서열 중심의 대법관 인선에 항의하며 법원장에게 사표를 제출한 직후였다. 그는 ‘사직의 변’에서 변화를 거부한 법원의 현실을 탄식했다.

“사법개혁에 대한 국민의 요구는 이제는 아무도 거스를 수 없는 큰 물결이 되어 사법부를 옥죄고 있다…. 그 기대를 철저히 저버릴 것으로 예상되는 지금의 상황에 대해 나는 허탈감과 참담함에 몸이 떨린다.”

박 부장판사의 사표 소식에 이용구 서울북부지원 판사(현 법무부 법무실장)가 대법관 후보 제청을 재고해 달라는 내용의 인터넷 연판장을 돌렸다. 160여명의 판사가 동참했다. ‘4차 사법파동’으로 일컬어지는 사건이다. 1997년 진보 성향 판사들 모임인 우리법연구회에 가입했던 김명수 현 대법원장도 여기에 동조했다. 김 대법원장은 그 이듬해 우리법연구회 제5대 회장에 올랐다. 박 부장판사는 우리법연구회 초대 회장이었다. 그는 법원을 떠났다가 2005년 11월 대법관이 돼 법원으로 복귀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9월 퇴임을 앞둔 양승태 대법원장 후임으로 박 전 대법관을 맨 처음 찾았다. 대통령의 삼고초려에도 박 전 대법관이 고사하고, 박 전 대법관과 함께 ‘독수리 5형제’로 불렸던 전수안 전 대법관마저 사양하면서 김 대법원장이 사법부의 새로운 수장이 됐다. 주문된 책무는 분명했다. 양 전 대법원장 체제에서 단절된 사법개혁의 맥을 다시 잇는 것. 보수화, 관료화, 정치화됐다는 직전 6년과의 싸움은 필연적이었다.

김 대법원장은 “좋은 재판의 실현을 최우선 가치로 삼겠다”며 취임식에서부터 ‘좋은 재판’ 드라이브를 공언했다. 이후 9개월이 흐른 지금, 사법부는 검찰 수사에 직면해 있다. 오랜 시간 성역이던 사법부의 대문을 열어준 건 김 대법원장 자신이다. 애초 법원의 문제는 법원 내부 힘으로 해결한다는 입장이었지만 거듭된 자체 조사 및 발표에도 불구하고 추가 규명 목소리가 이어지자 결국 검찰 수사 협조 뜻을 밝혔다. “법과 원칙에 따라 이뤄지는 수사에 대해 사법부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음은 분명합니다.”

그는 양 전 대법원장 시절의 대법원을 가리켜 “법관의 독립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스스로 훼손했다”고 규정하면서 절연을 선언했다. 과거 청산을 개혁의 동력으로 삼겠다는 뜻이었다.

돌은 던져졌다. 김 대법원장의 오케이 사인이 나오자 검찰은 기다렸다는 듯 칼을 들이밀었다. 대법원에 양 전 대법원장 등의 PC 하드디스크를 비롯해 공용폰과 이메일 기록, 법인카드 사용 내역, 관용차 운행일지 등 광범위한 자료 제출을 요청했다. “검찰이 다른 기관의 조사 내용을 검증하는 곳은 아니다”는 검찰 관계자의 말에서 이번 수사가 법원이 예상한 수준보다 훨씬 매서울 것임을 알 수 있다. 비(非)수사기관의 자체 조사와 기소를 전제로 한 수사는 방식이나 강도가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검찰 요구를 들어줄지 망설인다. 걷잡을 수 없이 파장이 커질 수 있고, 검찰에 속을 다 보여줬다가 두고두고 상투를 잡힐 수 있다는 두려움도 있다. 그러나 수사가 작동하기 시작한 이상 피할 길은 없어 보인다. 완전히 발가벗겨질 각오를 해야 할 때다. 이미 증거 훼손 의혹마저 제기되는 상황 아닌가. 한 검찰 고위 간부는 “우리도 대법원의 디그니티(위엄)를 망가뜨리고 싶지 않아요. 사법부를 위한다면 수사관들이 최고법원을 수색하는 상황까지 가기 전에 대법원이 먼저 100% 고해성사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했다.

대법원 앞에는 어느 때보다 혹독한 시련의 시간이 기다린다. 법원 안팎에서 법적 안정성에 대한 우려와 저항, 혼란과 분열이 있을 터다. 그래도 지금은 김 대법원장이 택한 방향이 틀리지 않다고 믿고 싶다. “좋은 재판이란 빈부나 지위고하에 관계없이 정의로운 판단이 내려지는 재판이라고 할 것입니다.”(김 대법원장 인사청문회 답변)

지호일 정치부 차장 blue5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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