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이른바 ‘양심적 병역 거부자’의 손을 들어줬다. 그들을 위한 대체복무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국회는 내년 말까지 병역법을 고쳐 군복무 대신 병역 의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대안을 제공해야 한다. 이렇게 시간적 여유를 두면서 대체입법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병역 거부자를 처벌해도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봤다. 기존의 병역 거부 처벌 판결은 효력을 유지하게 됐지만 결국 신념이나 종교에 따른 병역 거부의 정당성을 인정했다. 이 논쟁은 가장 기본적인 용어부터 심각한 왜곡을 내포하고 있었다. 병역은 헌법이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로 규정한 것이다. ‘양심’을 이유로 예외를 인정한다면 이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는 이들의 양심은 무엇이 되는가. 또 병역을 거부하며 내세우는 ‘양심’의 진정성은 과연 무엇으로 판단할 수 있는가. 헌재의 결정이 몰고 올 파장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헌재가 28일 위헌 여부를 판단한 것은 병역법 5조와 88조였다. 88조 1항은 ‘현역 입영 또는 소집 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3일이 지나도 입영하지 않거나 소집에 응하지 않는 경우 3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동안 이 조항에 따라 처벌된 사람은 2만명에 이른다. 그중 99%가 ‘여호와의 증인’이란 종교집단 신도들이다. 기독교 주요 교단은 이들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이들을 처벌하는 것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반면 5조에 대해선 다른 결정을 내렸다. 병역의 종류를 현역 예비역 보충역 병역준비역 전시근로역의 5가지로 규정한 조항인데, 헌재는 5가지 모두 군사훈련을 받아야 하는 것이므로 ‘양심적 병역 거부자’의 양심과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으니 대안을 제공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병역 의무 이행의 우회로를 하나 더 열어준 것이다.

소수자의 권리는 배려를 넘어 보장돼야 할 중요한 가치다. 하지만 공동체의 테두리를 넘어설 순 없다. 그것을 위해 사회를 움직이는 원칙이 바뀌려면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 과거 여러 차례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를 인정하지 않았던 헌재가 왜 지금 생각을 바꿨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란 말이 공공연히 나돌 만큼 병역 기피는 계층 갈등을 촉발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대체복무라는 우회로를 열어둘 경우 병역 회피 루트로 악용될 가능성은 매우 크다. 이런 우려를 모두 감안할 때 헌재 결정은 성급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정부와 국회는 이제 대체복무제를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형평성이다. 병역 의무에 대한 국민의 부담이 균형을 잃는다면 우리 사회의 원칙과 안보의 규율은 근간부터 흔들리게 된다. 그것은 이 제도의 대상인 소수자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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