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이재열] 규제 과잉인가, 규제 공백인가 기사의 사진
규제는 혁신을 막고 신산업으로 이어지는 것을 방해
대학을 둘러싼 규제는 간섭 넘어 질식사를 낳는 수준
규제 개혁보단 규제 불일치 해소하는 게 바람직해
이는 공공성 고민하는 관료 많아져야 풀 수 있는 문제


“대불산단 옆 교량에 세워진 전봇대에 걸려 대형 트럭이 회전을 못한다. 전라남도도, 목포시도, 산자부도 서로 안 된다고 미루다 몇 달이 지나도 해결 안 된다. 산단 입주기업들은 상·하역 과정에서 전선을 일부 철거했다가 작업이 끝나면 다시 설치하는 임시방편으로 문제를 해결해 왔다.”

“없어져야 하는 암 덩어리 핵심 규제들은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일자리 창출과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들을 한꺼번에 단두대에 올려라.”

규제개혁 회의를 취소했다고 논란인데, 만일 회의가 열렸다면 혁신성장을 다그쳤을 문재인 대통령 입에서 나왔을 만한 말들이다. 그러나 이는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발언이다. 정권이 바뀌면 색깔에 따라 확실히 바뀌는 것이 있다. 대북정책이 그렇다. 반면에 전혀 바뀌지 않는 것도 있다. 규제개혁이 대표적이다. 그만큼 구조적이고 고질적이며, 오래 누적된 문제라는 의미다. 창의성, 자율성을 기반으로 하는 문화, 학술, 교육, 과학기술, 그리고 새로운 신기술 영역에서 규제 혁파는 절실하다. 규제는 혁신을 막고 혁신이 신산업으로 이어지는 것을 방해한다. 대학을 둘러싼 규제는 간섭을 넘어 질식사를 낳는 수준이다.

실패 없는 혁신은 없다. 그러나 정부의 연구 관리에서 실패는 용납되지 않는다. 단 하루 일정 지연도, 단 1원 예산 오차도 안 된다. 결과는? 연구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쉬운 연구 혹은 실제와 보고용 연구를 나누는 이중구조다. 저명한 학술상을 받은 한 공학자는 별도 재원으로 80% 이상 성과가 만들어져야 정부 연구비를 신청한다고 말했다. 성공적 연구자일수록 이중장부 연구실을 만들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말한 것이다. 대학은 학생들을 마음대로 뽑을 수 없다. 입시 과목, 배점, 등급, 평가내용까지 간섭하는 꼼꼼한 입시 규제는 세계 최악이다. 왜 그럴까. ‘성과’에 대한 전문 평가능력 없는 관료들이 일정과 예산 등 눈에 보이는 ‘과정’ 기준으로 규제하기 때문이다.

신대륙에 도착한 콜럼버스는 ‘꾀꼬리’ 소리가 아름답다고 적었다. 그러나 신대륙에 꾀꼬리는 없었다. 자기가 익숙한 소리로 들었을 따름이다. 관료들은 정부가 기업과 사회의 지도교사 역할을 했던 발전국가 경험에 익숙하다. 그런데 국민교육, 택시 인허가, 저축은행 감독 등 구시대 이슈에 익숙한 관료들이 21세기형 온라인공개수업(MOOC), 우버 택시, 블록체인 기반 가상화폐에 대한 규칙을 정한다. 시대착오적 규제가 심각한 정책 실패를 낳을 거라 걱정하는 근거다.

문제는 규제 불일치다. 규제는 악, 규제 철폐는 선이라는 이분법이 횡행한다. 규제비용 총량제, 네거티브 규제, 효력상실형 일몰제 등은 모두 규제가 효율성의 적이며, 생산성과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것이라는 인식에 기반을 둔다. 창의성이나 교육, 신산업 등과 관련해서는 규제 과잉이다. 경제적 규제와 관련해 공공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과감히 규제를 혁파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안전과 관련된 사회적 규제는 사정이 다르다. 규제 공백이 더 문제다. 최근 논란이 된 대진침대 방사성 물질 누출을 둘러싼 리콜 사태나, 239명의 사망자와 1528명 이상의 심각한 폐 질환자를 비롯해 800만명 이상의 노출자를 낳은 옥시 제품을 중심으로 한 가습기 살균제 사고는 규제 공백의 피해가 얼마나 심각한지 잘 보여준다. 위험을 생산하는 기업이 이익은 내부화 또는 사유화하고, 위험의 피해는 외부화 또는 사회화하기 때문이다. 제품을 만들어 위험하지 않다고 팔았던 기업, 그 위해성을 걸러내지 못하고 공인 인증까지 해 준 정부, 그리고 기업 광고와 정부 관리시스템을 신뢰했다가 피해를 본 소비자 가운데 누가 입증의 책임을 져야 하는가. 위험 입증의 책임을 소비자에게 맡기는 것은 명백한 정부의 무능이자 책임 회피다.

잘못된 규제는 문제를 악화시킨다. 한국의 산재율은 독일의 4분의 1 수준이나, 사망률은 4배다. 이를 근거로 추정하면 실제 재해율은 발표치의 23배다. 대부분의 비사망 산재가 은폐된다는 뜻이다. 문화재 발굴도 마찬가지다. 개발을 위해 땅을 파다 유물이 발견되면 신고한 개발자는 망한다. 자기 비용으로 발굴해야 하고 인근 500m 이내는 문화재 보존지역으로 지정돼 향후 아무런 개발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선의의 신고자를 처벌하는 이런 규제로 얼마나 많은 산업재해가 숨겨지고, 역사적 유물들이 은폐돼 사라지고 있는가.

규제를 개혁한다고? 규제 불일치 해소가 답이다. 이는 공공성을 놓고 고민하는 똑똑한 관료들이 많아져야 풀 수 있는 문제다.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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