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호랑이의 위엄과 지조 높은 선비의 숨결 기사의 사진
경북 봉화군 명호면 삼동치 범바위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낙동강 물돌이.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기암괴석 사이 좁고 깊은 골짜기를 유장하게 휘돌아 흐르는 물길이 안개에 덮여 신비로운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구름 바다 위에 떠 있는 듯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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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C’. 전북 ‘무진장’(무주·진안·장수)에 견줄 만한 경북 3대 오지 봉화(B)·영양(Y)·청송(C)을 이르는 말이다. 그 가운데 산 높고 골 깊기로 첫째라는 봉화. 첩첩산중에는 호랑이 전설이 서려 있고, 실제 호랑이가 서식하고 있는 국립백두대간수목원도 자리잡았다. 아름다운 계곡에는 수많은 정자가 들어서 있다. 원시림과 대자연이 살아 숨 쉬는 청정지역으로 원시 그대로의 날것을 보러 떠나자.

호랑이 전설이 서려 있는 곳은 범바위다. 조선 고종 때 통덕랑(정5품)을 지낸 송암 강영달이 선조 묘소를 바라보며 원배(遠配)를 하다 예고 없이 나타난 호랑이를 맨손으로 잡았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명호면소재지에서 35번 국도를 타고 가다 지그재그와 빙빙 회전하며 가는 길에 올라서면 도로 바로 옆에 범바위 전망대가 마련돼 있다. 전망대 옆에 바위가 서 있다. 호랑이 모습이었던 바위는 도로를 개설하면서 훼손돼 호랑이 형태를 찾기는 힘들다. 대신 바위 위에 호랑이 조형물이 서있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면 낙동강물이 크게 물돌이를 만들며 유장하게 휘돌아 흐른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기암괴석, 낙동강이 감입 곡류하면서 아주 좁고 대단히 깊게 파놓은 골짜기의 경치가 빼어나다. 안동 하회마을이나 영주 무섬마을, 예천 회룡포의 물돌이에 못지않은 감동을 준다. 특히 아침 일찍 찾으면 운해가 깔린 모습이 장관이다. 구름 바다 위에 떠 있는 듯 속세와는 잠시 떨어져 있는 감흥이 떠오른다.

명호면소재지 인근에 ‘낙동강시발점공원’이 있다. 강원도 태백시 함백산에서 발원한 황지천과 봉화군 춘양면 구룡산에서 흘러온 운곡천이 만나는 곳이다.

인근에 매호유원지가 있다. 은어, 잉어 등이 많이 서식해 예로부터 낚시터로 이름났다. 500여년 전 안동 권씨 사온이라는 사람이 산수가 수려하고 매화꽃이 떨어지는 형국이라 해 ‘매호’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후 일제 강점기에 행정구역 개편으로 명호라고 불리게 됐다. 두(이) 강(나리)이 만나고 예부터 두개의 나루가 있었다 해 ‘이나리강변’이라고도 한다.

전설 속이 아닌 실제 호랑이가 살고 있는 곳이 춘양면 서벽리 일원의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이다. 한반도의 핵심축인 백두대간에 서식하고 있는 식물종을 체계적으로 보존·연구, 자원화하고 생태 교육 및 체험 시설 등으로 활용하기 위해 문수산과 옥석산 일대 5179㏊에 지난 5월 문을 열었다. 백두대간의 상징 동물인 호랑이가 서식할 수 있는 ‘호랑이숲’과 고산식물원·백두대간생태숲·종자저장시설·연구동 등이 들어섰다.

‘호랑이숲’에는 울타리를 치고 실제로 시베리아(백두산) 호랑이가 살고 있다. 7살 수컷 ‘우리’와 13살 암컷 ‘한청’이가 한낮 더위에 지친 듯 누워 있다가 관람객이 다가서자 어슬렁거린다. 커다란 몸집과 매서운 눈빛을 보니 호랑이의 위엄이 살아 있다.

태백산지에서 발원한 물이 응방산과 옥적봉을 지나면서 봉화산골에서 흘러온 옥수와 합쳐져, 봉화읍 유곡리에 이르면 시원한 계곡을 풀어 놓는다. 석천계곡이다. 계곡을 거슬러 가는 길은 이상세계를 향하듯 산과 내를 오간다. 계곡 초입에 문패처럼 큼직한 바위에 ‘청하동천(靑霞洞天)’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신선이 사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절경을 시샘한 듯 도깨비들이 이곳에 몰려와 정사에서 공부하던 서생들을 괴롭히자 보다 못한 권벌의 5대손 권두응이 이 글씨를 새기고 붉게 칠해 도깨비를 쫓았다 한다.

소나무 숲길을 지나면 석천정사(石泉精舍)가 모습을 드러낸다. 1535년 충재 권벌이 유배지인 평안도 삭주에서 세상을 뜨자 충재의 큰아들 청암 권동보(1518∼1592)가 관직을 버리고 두문불출하며 여생을 보내려 지었다.

더 오르면 ‘달실마을’(닭실마을)로 이어진다. 경상도 방언에서 ‘닭모양의 마을’을 달실이라고 부른다. 마을 동쪽의 옥적봉이 수탉, 서쪽의 백운령이 암탉을 닮은 지형이다. 마을은 안동 권씨 집성촌이다. 일제강점기 신작로를 만들기 전 봉화읍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길이 석천계곡이었다.

마을에 청암정(靑巖亭)이 있다. 1526년 충재가 기묘사화에 연루돼 파직당하고 이 마을에 들어와 서재와 함께 지은 것이다. 거북바위 위에 마루 6칸, 마루방 2칸짜리 정자를 올리고 둘레에 물을 끌어 연못(척촉천)을 만들었다. 주위에는 향나무, 느티나무, 단풍, 철쭉, 개나리꽃이 어우러져 자연의 세계를 만끽할 수 있다.

이상세계로 들어가는 외길처럼 오로지 돌다리와 돌계단으로 정자에 오를 수 있다. 드라마 ‘바람의화원’ 에서 신윤복(문근영)·김홍도(박신양)가 물그림자를 드리우고 서있던 돌다리다. 드라마 ‘동이’ 에서는 밤에 홀로 나와 고민에 빠진 숙빈(한효주)의 모습이 찍혔고, ‘정도전’에서 정도전(조재현)과 정몽주(임호)가 허심탄회하게 시국을 논의하는 장면으로도 등장했다.

미수 허목(1595∼1682)은 청암정을 마음에 뒀지만 몸이 늙고 길이 멀어 살아서 와보지 못했다. 그 아쉬움을 88세에 생애 마지막으로 ‘청암수석(靑巖水石)’ 글씨를 보내 달랬고 퇴계 이황(1501∼1570) 선행은 65세 때 이곳에 들러 멋진 시를 남겼다. 청암정 안에는 채제공(1720∼1799)의 글과 남명 조식(1501∼1572)의 ‘청암정’ 글씨가 달려있다.

청암정 앞 조그만 집 한 채는 서재인 충재다. 세 칸짜리 맞배지붕 건물로 누추하지 않고 검소하다. 군더더기 없이 골기 서린 꼿꼿한 선비 정신이 묻어난다.

마을에는 충재의 후손인 권용철(45·종손)·권재정(43·종부·예천 권씨)씨 부부가 살고 있다. ‘충재 종손, 젊은 종손부부 이야기’가 ‘지역명사와 함께하는 문화여행’에 선정돼 봉화의 문화관광 콘텐츠로 활용되고 있다.

젊은 종손내외가 만드는 종가문화는 남다르다. 청암정과 석천정사, 추원재로 대표되는 종가의 문화와 유산을 생산적으로 보존하기 위한 노력이 애틋하다. 용철씨는 한문학을 공부하고,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사서로 일하면서 문화재 보존과 전시에 관한 연구를 오랫동안 했다. 이를 바탕으로 충재박물관도 일궜고, 마을 탐방 시 해설을 직접 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종가문화를 바탕으로 예비적 사회기업을 만들어 지원사업을 유치하고, 현대에 맞도록 전통 체험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 여행메모

풍기 또는 영주나들목에서 36번 국도 이용
송이·한약우·닭실한과… 봉화 필수 먹거리


중앙고속도로 풍기 또는 영주나들목으로 나가 36번 국도를 타고 곧장 가면 봉화다. 범바위 전망대는 금봉교차로에서 918번 지방도를 따라가다 도천삼거리에서 좌회전해 35번 국도를 따라 3㎞ 더 가면 도착한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이 있는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는 제천나들목에서 38번 국도를 이용하다 영월에서 88번 지방도를 타고 가는 게 낫다.

봉화에서 꼭 먹어 봐야 할 음식이 몇 가지 있다. 봉화송이와 봉화한약우, 봉성 돼지숯불고기, 봉화닭실한과가 꼽힌다. 봉화송이는 마사토에서 자라 타 지역 송이보다 수분 함량이 적고 향이 우수하며 보관성이 뛰어나다. 송이솥밥으로 이름난 집은 봉성면 용두식당(054-673-3144)이다.

봉화한약우는 당귀, 백출 등 5종의 한약재를 첨가한 사료를 먹여 키워 일반 한우에 비해 성인병 예방에 좋은 불포화지방산이 25% 더 많고 쇠고기의 맛을 좌우하는 올레인산을 다량 함유하고 있다. 봉성면 봉성리에는 토속 음식인 돼지숯불구이 단지가 조성돼 있다.

‘닭실한과’는 유과, 입과, 전과 3가지 종류를 전국적으로 주문 판매하고 있다. 찹쌀 반죽에 멥쌀가루를 입혀 튀겨 조청을 바른 뒤에 강정, 튀밥, 깨 등을 박아 만든다. 국내산 재료만을 써서 전통 그대로 수작업으로 만들어진다.

봉화=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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