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유성열] 천연 상술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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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먼 옛날 인류는 힘이 없었다. 짐승에 의해 찢기고 재해에 죽어 나갔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도망치고 기도하는 일밖에 없었다. 좋은 머리를 가졌지만 생존에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현실은 너무나 가혹했다. 죽은 가족을 잠깐 추모하고 나면 곧바로 먹을거리를 구해야 했다. 미래에 대한 걱정은 사치였다. 기껏해야 내일 정도가 그들이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의 범위였다. 피부는 털 없이 매끈하고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이들은 자연 앞에서 한없이 무력했다. 인류는 자연을 끔찍이 두려워했고 증오했다.

그래도 인류는 꿈을 꿨다. 언젠가 자연을 극복하고 편하게 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랐다. 손재주가 뛰어나 그 꿈을 차근차근 실현해 갈 수 있었다. 끊임없이 만들고 바꿨다. 자연에서 멀어지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자연과 격리되려고 집을 지었다. 야생 식물은 대부분 먹기에 적합하지 않아 취사선택을 반복해야 했고, 겨우 먹을 수 있는 품종을 고른 뒤에는 개량에 개량을 거듭했다.

문명이 고도화됐다. 과학기술은 일반인이 이해할 수 없는 수준으로 복잡해졌다. 과거보다 좋은 물건을 만들지만 왜 좋은지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특히 물건을 파는 입장에서 과학기술 발전은 양날의 칼이었다. 소비자에게 상품의 원리와 내용을 완벽히 이해시켜 구매하도록 설득할 수 없었다.

그때 누군가가 맑고 깨끗한 공기와 물을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환경오염이 심각해지면서 그런 경향은 더 강해졌다. 상품에 천연이란 표시를 붙이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별 다를 것 없는 물건인데 날개 돋친 듯 팔렸다. 가격을 몇 배 올려도 잘 팔렸다. 반면 인공·화학·합성 따위는 차갑고 불쾌한 느낌이 강해졌다.

천연의 사전적 뜻은 ‘사람의 힘을 가하지 아니한 상태’다. 사람이 손만 대면 바로 천연이 아니게 된다. 그래서 엄밀히 말해 날것 그대로가 아니면 천연이 아니다.

하지만 천연이란 단어는 무분별하게 쓰인다. 콩을 화학적으로 변성시켜 만든 두부는 천연으로 분류되고 건강식품 취급을 받지만 해초를 화학적으로 발효시켜 만든 글루탐산일나트륨(MSG)은 화학조미료라고 불리며 배척당한다. 한때 MSG가 유해하다는 낭설이 퍼졌다. 그 여파로 현재까지도 ‘우리 가게는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음식점의 자랑으로 쓰인다. 그러나 화학조미료는 따지고 보면 자연에 존재하는 물질로 만든 천연원료 조미료다. 건강에 좋지 않다는 근거도 희박하다. 너무 맛있어서 탈이기는 하다.

천연의 범주를 ‘자연에 존재할 때와 최대한 가까운 상태’라고 폭넓게 설정해도 그 의미에 특별한 가치가 생기지는 않는다. 천연 독이나 합성 독이나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천연비타민이나 합성비타민이나 같은 비타민이다. 오히려 천연이 더 안 좋은 사례도 수두룩하다. 엽산은 천연보다 합성해 만든 게 흡수율이 뛰어나다. 유기농 식품, 천일염 등이 정말 건강에 좋은지에 대한 논란도 진행형이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천연 마케팅에도 한계는 찾아왔던 모양이다. 너도나도 상품에 천연 딱지를 붙이니 차별화가 되지 않았다. 이에 상술은 더욱 교묘해졌다. 그 결과물이 우리나라에서 ‘라돈 침대’ 사태로 나타났다.

음이온은 폭포 근처에서 많이 발견된다는 이유로 만병통치약 대우를 받았다. 음이온을 만들기 위해 방사성 물질을 넣었더니 제품이 잘 팔렸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음이온 제품을 갖고 있다면 쓰레기통에 버릴 것”이라고 권고했지만 천연 느낌이 나는 음이온의 파급력은 어마어마했다.

자연에 원래 존재하면서 사람에게 없어선 안 되는 물도 상술의 단골 소재다. 물을 얼릴 때 클래식 음악이나 사랑의 언어를 들려주면 결정이 아름다워지고, 헤비메탈 음악이나 욕설을 들려주면 추하게 형성된다는 주장이 책을 통해 제기된 바 있다. 이 동화 같은 얘기를 많은 사람이 믿었다. 이밖에 육각수를 시작으로 이온수·파동수·알칼리환원수·해양심층수 등 온갖 물이 등장했다. 최근에는 자화수, 수소수가 인기지만 그 효능이 확인된 건 없다. 물은 물일 뿐이다.

그럼에도 천연 마케팅은 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천연이라는 설명이 붙은 상품을 사면 안심이 된다. 심지어 행복하기까지 하다. 천연에 대한 맹신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자연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던 인류지만 이제는 자연과 가까워지겠다며 기꺼이 지갑을 연다. 불안하고 나약한 마음의 틈을 상술이 비집고 들어간다.

유성열 산업부 기자 nukuv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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