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흥우 칼럼] 文의 불운 기사의 사진
총선이었다면 개헌선 육박하는 의석 얻어…
그러나 혼자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소수 여당의 현실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을 매개로 개혁입법연대 구성하는 게 6·13 민의에 부합


민심은 변하기 마련이다. 평상시 그 변화의 속도나 폭은 제한적이다. 그러나 역사적 전환기인 경우 가히 혁명적이라고 부를 만큼 민심의 변화 속도와 폭은 엄청나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과정의 흐름이 그렇다. 주초 발표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은 지난주에 비해 다소 하락했으나 여전히 70%를 웃돈다. 재임 평균 지지율이 70%를 넘는 신기록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탄핵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인지도 모른다. 문 대통령이 몸담은 더불어민주당은 2년 전 치러진 20대 총선에서 한 석 차이로 제1당이 됐다. 하지만 정당득표율에선 국민의당에도 뒤져 3위에 그치는 수모를 당했다. 호남에선 국민의당 돌풍에 전멸하다시피 했다. 당시 민주당 최대 과제는 호남의 반문 정서 극복이었다. 영남에선 전에 비해 강도가 약해지긴 했지만 박 전 대통령 지지율이 여전히 공고했다.

이랬던 민심이 국정농단의 전모가 하나둘 드러나면서 급변했다. 야당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선거를 치렀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지난 대선에서 문 대통령 당선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여기에 취임 후 이명박정부의 온갖 비리까지 더해지면서 자유한국당의 입지는 더욱 좁아진 반면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조성된 한반도 화해 무드는 문 대통령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가는 곳마다 셀카 요청에 시달리는 문 대통령의 인기는 아이돌그룹 부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6·13 지방선거가 치러졌으니 결과는 불문가지였다. 지난해 대선에 이어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촛불 민심이 어김없이 위력을 떨쳤다. 대구와 경북을 제외한 지방 권력이 민주당 수중에 떨어졌다. 여권에 호재임이 분명하나 문 대통령 입장에선 빛 좋은 개살구일 수 있다. 국정 수행을 뒷받침하는 실질적인 힘이 되지 못해서다. 국정 과제를 차질 없이 수행하려면 입법을 필요로 하는 게 숱한데 의석수를 조금 늘렸을 뿐 여소야대 국회 권력 지형엔 근본적 변화가 없다.

현 20대 국회는 탄핵 전 민의로 구성됐다. 촛불 민심과 동떨어진 국회다. 지금의 민의를 반영한 국회라면 여대야소여야 하는데 말이다. 지방선거가 총선이었다면 민주당은 총 300석 가운데 지역구 169석 비례대표 24석 총 193석을, 자유한국당은 지역구 59석 비례대표 13석 도합 72석을 얻는 것으로 추산된다(6·13 기초단체장 선거 결과와 광역의원 정당득표율을 각각 지역구와 비례대표 득표율로 환산했을 경우). 민주당이 개헌선(200석)에 육박하는 의석을 얻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국회선진화법에 따른 법안 단독 처리에 필요한 재적 5분의 3(180석)선은 가뿐히 넘는다.

하지만 현실에서 민주당은 단독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소수여당일 뿐이다. 총선이 가까우면 좋으련만 다음 총선까지는 아직 2년이나 남았다. 국회를 해산시킬 합법적 수단도 없다. 2년 후면 문 대통령 임기 절반을 넘긴다. 개혁 동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시기다. 당장의 민의를 대변하지 못하는 국회 임기가 무려 2년이나 남았다는 것, 대통령의 불운이다.

손놓고 마냥 다음 총선을 기다릴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6·13 민심에 깜짝 놀란 야권 일각에서 개혁입법연대 구성을 제의했다. 여당과 초록동색이라는 민주평화당, 정의당이야 그럴 수 있다 쳐도 바른미래당 내에서 이런 주장이 나오는 건 선거 결과를 무겁게 받아들인 결과다. 여권이 평화당과 정의당, 일부 무소속 의원들로 개혁입법연대를 구성할 경우 국회 과반 의석 확보가 가능하다. 비록 확률은 낮지만 여기에 바른미래당까지 참여시킬 수 있으면 안정적인 국회 운영이 가능한 재적 5분의 3 이상도 확보할 수 있다. 6·13 민의에 가장 근접한 국회 구도다.

대통령 개헌안이 발의됐을 때 콧방귀도 뀌지 않던 야권이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 문제를 쟁점화하고 있다. 뜬금없기도 하고 정략적 의도마저 엿보인다. 여권 내 반응도 시큰둥하다. 이슈 변경으로 존재감을 높이는 데 야당의 의도가 있다 하더라도 여권의 태도는 자가당착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은 여권의 테제였다. 개헌의 필요성은 더 이상 말할 필요조차 없고, 이번 지방선거를 계기로 선거구제 개편도 더 미룰 수 없는 과제임이 증명됐다. 50%를 갓 넘은 득표율로 지방의회 80%를 장악한 건 심각한 민의 왜곡이다.

문 대통령 임기 초반이다. 개혁의 고삐를 더욱 조여도 부족할 판에 곳곳에서 저항이 거세다. 개혁의 성공을 위해선 야당의 협력이 절실하다. 문 대통령은 “촛불 민심을 헌법에 담기 위해” 개헌안을 냈다고 했다. 그 바람은 미완으로 남아 있다. 촛불 민심을 헌법에 담아내기 위해서도 여권이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을 매개로 개혁입법연대 구성을 주도해야 한다. 그게 6·13 민의를 구현하는 길이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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