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어디나 공평하게  쓸쓸한 풍경들 기사의 사진
‘냉정과 열정 사이’ ‘반짝반짝 빛나는’ ‘도쿄 타워’ 등으로 유명한 일본 작가 에쿠니 가오리의 최신 단편 소설집. 제38회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상 수상작인 표제작 ‘개와 하모니카’를 비롯해 작가 특유의 청아한 문체로 써 내려간 6편이 수록됐다. 가오리는 “단편소설을 쓴다는 것은 늘 여행과 비슷하다”고 한다. 실제 이 소설집은 누군가의 삶에 잠시 기착한 느낌을 안겨준다.

표제작 ‘개와 하모니카’는 공항 로비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평범한 순간을 카메라 비추듯 선명하게 그리고 있다. 외국인 청년은 가방을 잃어버려 허둥대고, 노부인은 딸과 손녀들을 두고 집으로 돌아오는 게 쓸쓸하다. 노부인은 어린 소녀를 보며 손녀들을 떠올린다. 소녀는 공항 수하물로 도착한 개를 보면서 자기 인형도 다음 여행에 동반하리라 다짐한다. 딸을 위해 인형을 가지고 나온 소녀의 아빠는 아내의 눈길을 자신에게 돌리게 만들려 애쓰지만 그녀는 외면한다. 노부인은 청년에게 손녀들이 자기를 부를 때 “오모니”라고 했던 것을 떠올리고 “내 이름은 오모니”라고 하지만 그는 알아듣지 못한다. 이렇게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지만 이들은 서로 다른 생각, 다른 감정을 느낀다. 쓸쓸한 풍경이다.

‘침실’은 5년간 사귄 애인에게 이별을 통고 받고 아내가 잠들어 있는 집으로 돌아온 중년 남성의 심리 변화를 담고 있다. 남자는 처음엔 “겁이 나서 마음 놓고 슬퍼할 수도 없다”며 애인이 떠나버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다 애인이 “당신은 박식해” “당신은 정직해”라며 칭찬했던 장면과 즐거웠던 시간을 반추한다.

이어 애인에게 버림을 받은 게 아니라 배신당했다고 결론짓는다. 낯설게 느껴지는 침실을 둘러본 뒤 잠든 아내를 내려다본다. 남자는 애인의 얼굴을 떠올리며 잠시 그리운 감정을 품고 애인이 헤어져준 데 고마움을 느끼며 아내의 등에 얼굴을 묻는다. 남자가 애인과 보낸 5년은 이렇게 그의 일상 뒤로 간단히 물러난다.

‘피크닉’에 등장하는 부부는 피크닉을 자주 갈 정도로 평화로운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내는 남편의 이름조차 정확히 외우지 못한다. ‘늦여름 해 질 녘’의 연인은 서로를 소유하고 싶어 하지만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고독은 더 커져만 간다.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누구도 채워주지 못하는 쓸쓸함을 안은 채 살아간다. 외로움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져 있다는 것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이야기들이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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