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송세영] 대체복무의 형평성 기사의 사진
군사정권 시절에는 어떻게든 군대를 면제받고 싶은 대학생들이 많았다. 지금보다 복무기간이 훨씬 길었고 병영 환경도 열악했다. 구타나 가혹행위, 안전사고로 숨지거나 부상당하는 이들, 사망 원인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아 의문사로 처리된 이들도 있었다.

학생운동을 하다 잡혀가서 징역형이 나오면 군 입대가 면제됐지만 전과자가 되는 일을 감수해야 했다. 독한 사람들 중에는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자해하는 이도 있었지만 육체적 고통이 수반되는 데다 회복 불가능한 장애가 뒤따랐다. 뇌물을 건네거나 브로커를 동원하는 일도 횡행했지만 명백한 범죄행위인 데다 돈도 많이 들었다. 석사장교라는 제도가 반짝 도입돼 석사학위가 있으면 6개월 군사교육만 받는 것으로 병역을 대체해줬다. 하지만 석사를 따기까지 돈과 시간이 많이 들었고 경쟁률도 높았다. 석사장교는 정권 고위층이나 기득권층 자제들의 병역면제를 위한 특혜라는 설이 난무했다.

군 입대를 미루다 4학년이 된 한 친구가 군 면제를 위한 온갖 편법과 불법을 조사하고 연구한 끝에 내린 결론은 체중감량이었다. 그의 평소 몸무게는 55㎏ 정도였는데 군 면제 기준은 45㎏이었다.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고 하루 한 끼 먹기를 시작했다. 간식은 일절 먹지 않았다. 담배를 많이 피우면 살이 빠진다는 속설에 따라 담배를 입에 달고 살았다.

10㎏쯤 빼는 것이야 모질게 마음먹으면 일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기준 아래라 해도 42㎏이나 43㎏ 정도면 일시적 감량으로 간주돼 현역이나 보충역 처분을 받았다. 확실하게 면제를 받으려면 40㎏을 훨씬 밑돌아야 했다.

첫 번째 신체검사에선 37㎏이 나왔다. 몇 달 사이 몸무게의 3분의 1인 18㎏을 뺐지만 면제를 받지 못했다. 병무청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1년간 2∼3차례 불시에 불러들여 몸무게를 다시 잰다고 했다. 하루 한 끼만 먹으며 힘이 없어 잘 걷지도 못하고 주로 누워만 있는 생활이 1년간 계속됐다. 얼굴은 노래지다 못해 까매졌고 눈은 움푹 파였다. 산송장 같은 생활로 버틴 끝에 불시에 치른 신체검사에서도 몸무게가 35∼37㎏에 머물렀다. 1년6개월 가까운 고투 끝에 그 친구는 마침내 면제 판정을 받았다.

병역거부자들을 위해 대체복무를 도입하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보면서 떠오른 기억이다. 병역을 기피하는 세태는 그 후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외과 수술로 무릎 연골을 제거한 운동선수, 멀쩡한 이를 무더기로 뽑거나 허위로 조현병(정신분열증) 진단을 받은 연예인들도 있었다.

그런데도 헌재는 이를 과소평가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2016년 병역판정 검사를 받은 인원은 총 34만명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연평균 약 600명 내외일 뿐이므로 전투력 감소를 논할 정도로 의미 있는 규모는 아니다”고 밝혔다.

이는 교리를 이유로 교도소에 가면서까지 병역을 거부하는 기존 여호와의증인 신도들 중심의 집계일 뿐이다. 병역을 거부해도 교도소에 가지 않고 대체복무를 할 수 있다면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자’인 여호와의증인 신도들이 급증할 가능성이 높다. 헌재도 이 점을 의식해 “공정하고 객관적인 심사 절차, 현역복무와 대체복무 사이의 형평성 확보 등을 통해 진정한 양심적 병역거부자와 이를 가장한 병역기피자를 제대로 가려낸다면”이라는 조건을 제시했다. 하지만 양심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검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있다면 여호와의증인 신도 경력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교회가 우려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국가의 정책이 특정 종교집단에 특혜를 주는 것이어선 안 된다.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명시한 헌법 제20조에 위배된다. 대체복무를 도입해야 한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다’는 모든 이들에게 대체복무의 기회를 주되 병역기피자들이 도저히 선택할 수 없을 정도로 대체복무 기간을 늘리고 강도를 높이는 것이다.

송세영 종교부장 sysoh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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