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준동] 조현우의 월드컵 그리고 K리그 기사의 사진
2002년 한·일월드컵 때 경기장을 수놓은 카드 섹션을 기억할 것이다. 관중석을 붉게 물들인 가운데 하얀 글씨로 새긴 장면이 아직도 선명하다. 한국 축구 대표팀 공식 서포터스인 ‘붉은 악마’의 아이디어였다. 매 경기 의미를 담아 연출한 카드 섹션은 위력을 발휘했다. 대한민국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으며 4강 신화의 디딤돌을 놓았다. 터키와의 3, 4위전 슬로건은 ‘LOVE CU@K리그’였다. 한껏 끓어오른 축구 열기를 국내 프로축구 K리그로 이어가자는 취지였다.

이는 적중했다. 월드컵 직후 축구장에는 구름 관중이 몰렸다. 7월 평균 관중은 무려 2만5008명이었고 8월 관중도 평균 2만1974명에 달했다. 1983년 출범 후 줄곧 침체를 거듭하던 K리그에도 르네상스가 도래했다고 다들 들떴다. 하지만 9월 평균 관중이 1만450명으로 반토막 나더니 10월에는 5646명으로 다시 절반으로 줄었다. K리그 열풍을 준비하고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축구 행정가들의 무능도 한몫했지만 무엇보다 팬들의 축구 열기가 급랭한 게 결정적이었다. 월드컵이 열릴 때만 반짝 달아오르는 냄비 근성이 그라운드를 또다시 강타한 것이다.

국내 1부 리그인 K리그1(클래식)의 평균 관중은 5300여명에 불과하다. 2000명도 차지 않는 경기장에서 선수들이 플레이할 때도 허다하다. 러시아월드컵의 최고 히어로 조현우는 좌석이 텅 빈 상황에서 경기를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의 소속팀 대구FC는 홈 4경기 연속 3자리 관중 수(4월 11일 477명, 4월 15일 926명, 4월 25일 523명, 4월 28일 790명)를 기록했다. 이것이 바로 초라한 국내 리그의 현주소다. 오죽했으면 조현우가 귀국 일성으로 “월드컵에서 보여준 관심을 국내 리그에도 보여줬으면 좋겠다”라고 했겠는가. 세계 최강을 울려도 현실로 돌아오면 다시 아픈 현실을 만나는 게 어쩌면 두려웠을지도 모르겠다.

8강에서 아깝게 탈락한 일본을 보자. 일본 J리그는 우리보다 10년이나 늦은 93년에 닻을 올렸다. 리그 수준이 우리보다 내용면에서 확실히 우위에 있다고 보기 어렵지만 팬들은 경기장을 꾸준히 찾는다. 2016년 기준 평균 관중은 1만7803명으로 국내 리그보다 3배 이상 많다. 94년 출범한 중국 슈퍼리그는 더 뜨겁다. 중국 축구가 매번 월드컵 본선 무대에도 오르지 못하지만 슈퍼리그는 가히 열광적이다. 2016년 평균 관중은 2만4159명으로 3국 리그 중 가장 많다. 자국팀이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는데도 이번 월드컵을 현장에서 단체 관람한 인원만 10만명에 달한다. 대표팀의 경기와는 관계없이 축구 자체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이런 열기에 시진핑 주석까지 공개적으로 ‘축구 굴기’를 외치면서 중국은 월드컵 개최 100주년이 되는 2030년 월드컵을 유치하려는 야망을 갖고 있다. 실현 가능성도 높은 편이다.

농작물의 뿌리를 굳건히 하려면 평소에 거름도 주고 잡초도 뽑아야 한다. 그래야 풍성한 결실을 기대할 수 있는 법이다. 월드컵이 그렇다. 4년짜리 농사나 다름없는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서는 한국 축구의 뿌리가 튼튼해야 한다. 하지만 팬들은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국내 리그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그러면서 월드컵 기간만 되면 너도나도 16강 진출을 외친다. 축구계 인프라와 선수들의 실력은 한참 모자라는데 늘 이상만 좇는다. 선수와 감독에 대한 과도한 비난도 서슴지 않는다.

이대로 가면 한국 축구는 일본 중국에 밀려 ‘아시아의 종이호랑이’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4년 후 월드컵 본선도 기약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5일 직접 나서 대대적인 시스템 개혁을 외쳤지만 왠지 미덥지 못하다. 4년 전에도 그렇게 외쳤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이런 가운데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월드컵 휴식기를 마치고 7일 재개되는 K리그에 팬들의 관심이 높다는 것이다. 조현우의 8일 경기는 골문 뒤 300석이 매진됐을 정도다. 헌데 이 열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걱정이 앞서는 건 왜일까.

논설위원 jd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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