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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의 소리] 어떤 정치한계주의자의 변명

[시온의 소리]  어떤 정치한계주의자의 변명 기사의 사진
목사가 강단에서 세상 정치에 대해 발언하는 것이 적절한가. 찬반양론이 있는 주제다. 하지만 목사이자 신학교수인 나는 정치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만나자마자 정치적 성향을 묻는다는데 나는 정치적인 견해를 공적으로 밝히는 것도 삼가는 편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나는 정치 전문가가 아니다. 복잡하고 시시각각 새로운 사건들이 발생하는 정치 현실에 대해 매번 그 진상을 파악해 견해를 내놓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물론 나도 한 사람의 시민으로 날마다 뉴스를 읽고 정치에 관심을 기울인다. 하지만 공적인 자리에서 전문가도 아닌데 한 소리씩 하는 것이 과연 듣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까.

나는 정치적 견해를 밝힘으로써 어떤 사람과 관계가 소원해지는 것도 원치 않는다. 살다 보면 정치적 소신을 밝혀야 할 때도 있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그럴 필요는 없다. 비생산적인 토론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과 불필요하고 수습하기도 힘든 토론을 만들어 좋은 결과를 얻은 적이 별로 없기에 일부러 정치적 견해를 밝히지 않을 때가 많다.

정치적 소신을 피력한 것 때문에 성도들 사이의 논쟁을 조장하고 싶지도 않다. 이미 정치 토론은 엄청나게 많은 인터넷 사이트와 SNS에 유통되고 있다. 클라우스 슈바프는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될수록 사회가 분열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사람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견해만 찾아 읽고 봄으로써 자기 견해를 더욱 강화해 나가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교회에 또 다른 분열을 조장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

이유는 또 있다. 개인적 취향과 관계된 것이다. 나는 조용히 살고 싶다. 교부들 가운데도 정치 현안에 깊이 관여했던 바실리우스와 같은 이가 있었는가 하면 그의 동생 그레고리우스처럼 조용한 삶을 좋아한 이들도 있었다. 현대사회에선 갈수록 ‘조용히 자적하는 삶’이 희귀해지고 있다. 나는 정치적 이슈에 대해 깊이 관여함으로써 마음의 평안이 깨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시대적으로 절체절명의 순간에 도피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인정한다. 하지만 각자 받은 소명(召命)이 다를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런 면에서 난 할 일이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들은 정치에 직접 개입하고 활동함으로써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옳다. 하지만 내 생각엔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법이 비단 그것뿐인 것은 아니다. 더 근원적으로 삶에 대해 고찰하고 영적인 측면에 자극과 도전을 줌으로써 사람들의 삶과 세상의 변화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도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정치로 풀 수 없는 문제들을 철학과 문학, 역사와 신학, 교양이 풀 수 있음을 잘 보여준 탁월한 신학자였다.

비정치적으로 정치적인 영향을 주기 위해 나는 사색하고 독서하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글을 쓰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글을 쓰려면 독서하고 사색해야 한다. 하지만 정치 문제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앗아간다. 나는 스스로의 시간과 마음을 단속하기 위해 정치 문제에 대해 스스로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만큼만 관심을 기울이는 편이다.

끝으로 나의 이런 태도는 근본적으로 내가 스스로 이름붙인 ‘정치한계주의’라는 생각에서 기인한다. 정치한계주의란 정치 무관심도 아니며 정치 환멸은 더욱 아니다. 그것은 정치가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요구하되 정치의 한계 역시 인정하자는 입장이다. 로마서 13장을 묵상하다가 깨달은 것인데 프랑스 철학자 폴 리쾨르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 리쾨르는 정치가 중요하지만 정치가 전부는 아니며 정치가 할 수 없는 영역에서 철학과 윤리가 좋은 기여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별히 나는 기독교 신앙은 정치를 뛰어넘는 영역에서 작용하는 힘이 크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모든 문제를 정치로만 소급하고 환원해 생각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정치신학자 진 엘슈테인이 ‘아우구스티누스와 정치의 한계’라는 책에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는 타락과 종말 사이에 살아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하며 우리의 정치적 행동은 실제적이지만 한계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아울러 정치가 주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선 정치적 문제를 야기하는 더 근본적인 지점들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정치를 알고 사고하되 정치에만 묶여서 사고해선 안 된다.

우병훈(고신대 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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