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남긴 꿈, 엄마의 ‘내일’로 피어나다 기사의 사진
별이 된 고(故) 유아라씨는 또 다른 다섯 생명으로 다시 태어났다. 지난달 27일 한국장기조직기증원 본사에서 만난 엄마 박정순씨는 그날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박씨는 “이제 괜찮아졌다”면서도 아라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호흡을 꽤 오래 가다듬었다. 윤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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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꽃이 피면 울었고 비가 와도 울었다. 그토록 기다리던 크리스마스를 목전에 뒀던 2014년 12월 22일, 심장을 떼어줘도 아깝지 않았던 맏딸은 꽃 같던 스물세 살 나이에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하지만 엄마의 세상은 끝나지 않았다. 어딘가에서 살아 숨 쉬고 있을 딸의 조각들이 살아갈 길을 밝혀주고 있다. 별이 된 고(故) 유아라(사진)씨는 또 다른 다섯 생명으로 다시 태어났다. 지난달 27일 한국장기조직기증원 본사에서 만난 엄마 박정순(49)씨는 그날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박씨는 “이제 괜찮아졌다”면서도 아라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호흡을 꽤 오래 가다듬었다.

참 이상한 날이었다. 항상 제 또래보다 어른스러웠던 맏딸은 그날따라 어리광을 부렸다. 박씨는 아라와 여느 때처럼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30분쯤 지났을까. 막내딸에게 전화가 왔다. 조금 상기된 목소리로 “언니가 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편의점을 나서다 차에 좀 치인 거겠지 했다. 박씨는 “당연히 큰일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자취방에 김치가 없다’고 응석을 부린 것이 바로 조금 전이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딸 자취방에 보낼 김치를 준비할 생각이었다. 그게 유언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라는 “엄마가 담근 김치가 먹고 싶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심해야 당분간 걷지 못하는 정도겠지’라고 생각했다. 까치발을 들고 살짝 열린 문틈으로 응급처치 중인 딸을 찾았다. 혈액 수십 통이 몸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본 뒤에야 “잘못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박씨는 “비관적인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는 동시에 가슴을 세게 두 번 쳤다. 어떻게 딸의 마지막을 생각하는지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수술을 앞둔 의사가 “한 손을 못 쓸 수도 있다”고 말하자 “살려만 달라”고 애원했다. 딸이 불구가 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늘은 무심했다. 12시간은 족히 걸릴 거라던 수술은 4시간 만에 끝이 났다. 박씨는 본능적으로 ‘아 포기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하늘이 무너져 내려도 그토록 고통스럽지는 않을 것 같았다. 딸의 마지막을 준비해야 했다. 의사는 ‘뇌사’를 말했고 그때만 해도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그러다 ‘장기조직 기증’ 의사를 묻는 의료진의 말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박씨는 “장기조직 기증을 ‘숭고한 일’이라고 막연하게 생각은 했었지만 막상 내 일이 되니 멍했다. 꿈속에서도 맞닥뜨려본 적이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그날 심정을 차마 자세히 설명하지 못했다.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딸의 마지막을 직접 ‘선택’해야 했다. 그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는지 막내딸이 달려와 “언니 손 아직 따뜻하다. 말도 안 되는 생각 하지 말라”며 울부짖었다. 박씨는 딸의 손을 잡아봤다. 따뜻했다. 그렇게 꼬박 이틀을 고민했다. 엄마가 딸의 마지막을 고민하는 것만큼 큰 고문은 세상에 없다. 그때마다 박씨는 ‘아라였다면 어떻게 했을까’를 떠올렸다. 그러자 서서히 답이 보였다. 마침내 장기조직 기증을 선택했다. 소식을 접한 주변에서는 ‘얼마나 준대?’라고 묻는 이들도 있었다. 당시 박씨의 집안형편이 그리 좋지 않았던 시절이었기에 비수가 되어 꽂혔다. 결정을 내려놓고도 망설이던 박씨는 “장기조직 기증에 대해 여러 방면으로 알아봤다. 그러다 예전에 봤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생각났다”고 말했다. 이식대기자들의 절절한 사연을 기억하고 있었다. 박씨는 “우리 가족 이야기가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끝내 이식을 받지 못해 숨졌던 한 환자의 모습이 내내 마음에 남았었다”고 설명했다. 박씨가 결단을 내리자 그다음 일은 척척 진행됐다. 딸은 잘 버텨내 주었고, 여러 번의 검사를 거쳐 기증대상이 되었다.

마지막 날, 막내딸은 끝내 오지 않았다. 언니의 죽음을, 엄마의 선택을 여전히 믿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박씨는 아직 따뜻한 아라의 손을 잡고 마지막 힘을 짜내 “나에게 와주어 정말 고마웠다”고 말했다. 며칠 밤을 꼬박 새워 말하고도 남을 많은 말을 가슴에 묻고, 딸의 온기를 평생 잊지 않겠다고 수천번 다짐한 뒤 손을 놓아주었다.



아라는 별이 되면서 생과 사를 오가던 환자 다섯 명에게 ‘새 생명’으로 남았다. 박씨는 장기조직 기증을 “아라가 선물한 ‘후천적 탄생’”이라고 말했다. 엄마의 자궁에서 태어난 순간을 선천적 탄생, 장기조직 기증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을 후천적 탄생으로 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딸의 ‘조각’이 어딘가에 남아 있다는 사실은 큰 위안이 됐다. 박씨는 “밥을 먹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죄스러웠는데 아라의 장기가 어딘가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큰 안식처였다”고 말했다.

딸은 떠났지만 못내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아라는 성악을 전공하던 대학생이었다. 형편 탓에 유학은커녕 변변한 레슨 한 번 제대로 받게 해주지 못했다. 일찍 철이 들어버린 큰딸은 싫은 소리 한 번을 안 했다. 그러다 꽤 오래 고민한 듯 “제발 레슨 한 번 받아 보고 싶다”고 말했을 때 박씨는 가진 돈을 탈탈 털었다. 물론 넉넉지 않아 두 달 만에 그만둬야 했지만 말이다. 박씨는 “딸의 모든 순간을 사랑했지만 특히 노래를 부르던 모습이 가장 예뻤다”고 말했다.

딸 대신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 기증자 유가족·이식수혜자 등 약 60명이 모인 ‘생명의 소리 합창단’에 가입했다. 이 합창단은 한국장기조직기증원에서 운영한다. 박씨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한다는 사실이 조금 쑥스러웠다”고 말했지만 합창단원들은 “아주 실력 있는 단원”이라고 칭찬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비슷한 아픔을 겪었기에 이들과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고 입을 모았다. 딸이 사랑했던 음악은 모든 것이 죄스러웠던 엄마에게 날아와 희망으로 피어났다.

모두가 박씨에게 “이제 그만 잊으라”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자식을 잊을 수 있는 엄마가 이 세상 어디에 있겠느냐”고 되묻고 싶다고 했다. 박씨는 딸을 잊지 않기 위해 장기조직 기증을 선택했다. 이 세상 어딘가에 딸의 숨을 이어받은 생명들이 살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박씨는 살아갈 용기를 낸다. 그러면서 딸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한참을 망설이던 박씨가 어렵사리 입을 뗐다. “아라야 다음에 꼭 다시 만나자.”

▒ 이식대기자 2만7701명… 작년 뇌사자 기증자 515명

한국장기조직기증원 2017년 자료에 의하면 하루 평균 3.29명의 이식대기자가 안타까운 생을 마감하고 있다. 국내 이식대기자는 2만7701명이다. 지난해 뇌사자 기증자는 515명뿐이었다.

2015년 질병관리본부 장기조직 기증 인식조사에 따르면 19∼59세 1000명 중 “기증 의향이 있다”고 답한 사람은 413명이었지만 실제 기증 희망 등록자는 17명에 그쳤다. 이유를 들어보니 ‘절차가 번거롭고 나중에 돌이킬 수 없다’는 오해가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기증 서약은 언제든 취소할 수 있고, 생전에 했더라도 가족이 반대하면 이뤄지지 않는다.

또 최근 장기조직 기증과 관련한 불미스러운 일이 알려지면서 그나마도 저조한 기증서약에 적신호가 켜졌다. 했던 서약마저 취소하는 이들도 많다. 한 매체의 보도가 발단이었다. 장기 적출을 마친 아들 시신을 병원에서 ‘나몰라라’하는 통에 유가족이 직접 차에 실어와 수습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제도적으로 미비한 부분이 있었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과 협약이 되어 있지 않은 소수의 병원은 장기조직 기증 과정을 병원 자체 매뉴얼대로 진행했다. 때문에 이송 과정에서 착오가 생긴 것이다. 불편함을 개선코자 올해 4월 16일부터는 전국 모든 기증자 측이 이송을 원할 시 한국장기조직기증원에서 전담해 책임지고 있다.

▒ 작년 장기기증 약속 2.6%… 선진국은 평균 30%

국내 장기조직 기증을 약속한 이들은 지난해 기준으로 약 2.6%인 반면 대다수 선진국은 평균 30% 이상이다. 이들 나라는 ‘장기조직 기증 촉진법’을 시행하고 있다. 운전면허를 취득할 때 기증 희망 여부를 묻는 식이다.

한국의 경우에도 연간 115만명가량인 응시자 중 10%만 예비 기증자로 등록하더라도 신규 기증 희망자를 상당히 늘릴 수 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관련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개정안에 따르면 도로교통공단과 각 지방경찰청은 운전면허시험 응시자나 적성검사 이후 면허증을 갱신하는 운전자에게 기증의사를 묻고 등록 신청을 받을 수 있다.

접수 결과는 실시간으로 국립장기이식관리기관에 전달돼 서약이 이루어진다. ‘옵트인(Opt-in) 옵트아웃(Opt-out) 제도’에 대한 논의도 이뤄져야 한다. 한국을 포함해 일본 미국 등은 옵트인 방식이다. 생전에 기증의사를 밝혔을 경우에 한해 기증하는 방식이다. 스페인 프랑스 오스트리아 아르헨티나 등에서는 옵트아웃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기증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은 모든 국민을 기증 대상자로 분류하는 식이다. 장기조직 기증이 ‘특별한 사건’이 아닌 온 국민의 ‘기본 방침’이 되는 것이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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