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청와대 주도의 국정운영 방식 바뀌어야 기사의 사진
대통령이 답답함 토로할 정도로 관료사회에 보신주의 만연한 데에는
청와대 책임 적지 않아
청와대 비서실 권한 줄이고 내각에 힘 실어주기를


지난달 27일, 대통령 주재 규제혁신점검회의가 2시간 전에 전격 취소되는 이례적인 일이 벌어진 적이 있다. 청와대는 “답답하다”는 문재인 대통령 발언까지 브리핑했다. 혁신 성장을 주도할 신산업 분야에 대한 획기적인 규제혁신 계획을 마련하지 못한 공직사회에 대한 강한 질타의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런데 관련부처 공무원들은 잔뜩 긴장하고 있을까. 아닌 듯하다. 복합적인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다. 우선, ‘규제권은 밥그릇’이라는 인식이 아직도 관료사회에 만연돼 있다는 점이다. 규제를 촘촘하게 만들어 놔야 알량한 권한을 행사할 여지가 상대적으로 커지고, 예상치 못한 사고가 터졌을 때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이 된다는 경험칙이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얘기다. 기업들의 아우성에도 불구하고 규제 철폐를 위한 부처 간 소통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고, 이중 규제마저 생겨나는 이유다. 5년 임기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바뀌기 힘든 사고의 틀이다.

공직사회의 보신주의와 무사안일을 더욱 부추기는 건 청와대 주도로 추진 중인 부처별 적폐청산 작업이라는 게 공무원들 전언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4월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부처별 적폐청산TF가 조사결과를 발표하는 과정에서 일부 혼선이 있었다”면서 “중하위직 공직자들에게 불이익을 줘선 안 된다”고 했다. 박근혜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작업에 관여한 실무직원들까지 수사의뢰 대상에 포함돼 관료사회가 뒤숭숭해지자 나온 발언이다. 그러나 얼마 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는 전·현직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과 산하 공공기관 임직원 등 무려 130명을 수사의뢰하거나 징계하라고 문체부에 권고했다. 중하위 실무 공무원이 포함된 것은 물론이다. 앞서 국가정보원 등에서 적폐로 몰려 처벌 받거나 좌천된 이들이 적지 않다. ‘망신주기’ 수준의 조치도 있었다. 또 4대강 사업에 대한 감사원의 네 번째 감사 결과가 지난 4일 발표되면서 환경부와 기획재정부, 국토해양부 등 당시 4대강 사업이 이명박 전 대통령 뜻대로 시행되도록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주었던 유관부처 공무원들은 아마 밤잠을 설치고 있을 것이다. 앞서 세 차례 겉핥기식 감사에 참여했던 감사원 공무원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보수정권의 주요 정책 수립 및 집행에 간여했던 동료들이 적폐로 낙인찍히는 걸 보면서 공직자들이 느끼는 건 한결같을 것이다. 현 정권이 심혈을 기울이는 정책이나 국책사업 등에 몸담았다가 정권이 바뀌면 언제든 적폐로 몰릴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당연히 갖게 되지 않겠는가. 이러니 심리적으로 위축돼 움츠러드는 공무원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고, 정권 코드에 맞춰 적극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기보다 납작 엎드려 허드렛일을 하면서 시간 보내는 게 최선이라는 분위기가 확산될 수밖에 없다. 논쟁적 사안이나 책임질 만한 결정을 회피하는 이른바 ‘변양호 신드롬’이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부처 조직을 장악하지 못한 채 겉도는 장관들로 인해 공직사회 기강잡기는 더 어려워진 상태다. 장관 개인의 능력 문제일 수도 있지만, 청와대가 주요 정책과 각 부처의 핵심 인사를 좌지우지하는 게 주요인이다. 청와대의 만기친람(萬機親覽)으로 ‘장관 패싱’이 회자되면서 장관 중심으로 부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은 물론 갑작스럽게 현안이 터져 궁지에 몰린 장관을 적극 방어하는 공무원을 찾아보기 힘든 기현상도 나타난다.

대통령이 실망감을 표할 정도로 규제혁신이 지지부진한 배경에는 이런 요인들이 자리하고 있다. 청와대가 자초한 면이 없지 않다는 뜻이다. 징조는 현 정부 출범 초기부터 나타났다. 그러나 청와대 중심의 국정운영 방식은 계속되고 있다. 내각은 청와대 비서실의 하부조직 정도에 머물러 있다.

분명하게 드러난 부작용은 아직 없다. 하지만 적절성 여부를 집권세력 스스로 자문해야 한다. 어수선했던 조기 대선 후유증은 사라졌다. 일사불란을 중시해야 했던 집권초기도 아니다. 이제 문 대통령이 청와대 비서실 권한을 줄이고, 내각에 힘을 실어줄 때가 됐다. 고공 행진 중인 대통령 지지율에 취하지 말고, 집권 직후 ‘군림하지 않는 청와대’를 강조했던 초심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책임총리·책임장관제를 실시하겠다는 약속을 되새겨야 한다. 청와대 하명만 기다리는 내각이 아니라 책임감을 갖고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내각이어야 공직사회의 복지부동도 차츰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왕적 대통령이 될 위험성을 줄일 수 있다. 조만간 선보일 2기 내각을 계기로 청와대 비서실 주도의 국정운영 방식이 바뀌길 기대한다.

편집인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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