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글랜드’ 날려버린 종가집 사나이…잉글랜드 사우스게이트의 ‘괴짜 리더십’ 기사의 사진
지난해 6월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감독의 주도 아래 해리 케인(왼쪽에서 네 번째) 등 잉글랜드 선수들이 영국의 한 군사훈련소에 입소해 조교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잉글랜드 축구협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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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수십억 받는 선수들, 텐트서 잠 재우며 군사훈련 NFL·NBA 전술도 응용
‘세트피스’ 승리 영향 인식, 지금까지 11골 중 8골 넣어
순간적인 부챗살 공격 위력
28년 만에 4강… 우승 넘봐


영문도 모른 채 군사훈련소에 집결해 조교의 지시에 따라 유격훈련을 받고 야외 텐트에서 잠을 청한다. 감독이 함께 흙탕물에서 뒹굴며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대처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의 ‘쌍팔년도’ 훈련 야사 같지만 이는 평균 수십억원의 연봉을 받는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 이야기다. 이들은 이번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4팀 중 하나가 됐다.

자국 프리미어리그 스타 출신들로 구성됐지만 모래알 조직력으로 국제대회에서 매번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던 잉글랜드가 러시아월드컵에서는 확 바뀐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정교한 세트피스, 강력한 전방 압박과 역습, 농익은 스리백 수비는 과거 잉글랜드 플레이를 상징하는 ‘뻥글랜드’ 방식과는 사뭇 달랐다. 뻥글랜드(공을 뻥 차기만 한다는 뜻의 ‘뻥’+잉글랜드)는 투박한 롱패스 위주의 단순한 전술과 부족한 골 결정력으로 붙여진 별칭이었다. 변화의 중심에는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잉글랜드 감독의 선입견을 깨는 ‘괴짜’ 리더십이 있었다.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비리 스캔들 여파로 전임 샘 앨러다이스 감독이 중도 사퇴한 2016년 11월부터 팀을 맡았다.

잉글랜드 축구계는 축구 종주국이라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채 보수적인 성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자유분방한 선수들에게 군사훈련을 받게 하며 정신무장부터 시켰다. 본인도 함께 몸을 딩굴면서 원팀의 가치를 선수들이 알게 했다. 또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직접 미국프로풋볼(NFL)과 미국프로농구(NBA)를 관전하며 이를 축구 전술에 활용하는 독특한 행보를 보여줬다.

미식축구는 정지된 상황에서 공격을 시작해 수십 개의 약속된 전술 중 하나를 사용한다. 농구는 동료를 위해 스크린을 걸어 다른 수비수의 길목을 차단하고, 공을 갖지 않은 선수들이 활발히 움직여 빈 공간에서 공을 받아 슈팅을 시도한다. 축구에서도 벤치마킹할 만한 요소가 분명히 있다.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타 종목에서 전술을 배우는 것에 대해 “항상 배우는 자세로 새로운 생각을 팀에 주입시켜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노력 끝에 나온 게 바로 잉글랜드의 가공할 만한 세트피스 전술이다. 잉글랜드는 이번 대회에서 총 11골을 기록했는데 그 중 조직적인 세트피스(세트피스 상황 시 나온 페널티킥 득점 포함)를 통해서만 8골을 넣었다. 이번 월드컵 4강 진출 팀 중 세트피스 득점률이 가장 높다.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일찍이 세트피스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그는 “이전 월드컵 우승팀인 스페인과 독일의 경기를 보니 세트피스에 매우 능했다”며 “세트피스는 사람들의 생각보다 더욱 승리에 기여하는 바가 많다”고 말했다. 코너킥을 시작하기 전 잉글랜드 선수들이 일자로 서 있다가 순식간에 부챗살처럼 흩어지면서 볼을 소유하고 슛을 쏘는 장면은 이번 월드컵의 볼거리가 되고 있다.

잉글랜드는 7일(한국시간) 열린 러시아월드컵 8강전에서 ‘질식수비’를 자랑하는 스웨덴의 수비진을 유린하며 2대 0으로 완승했다. 이날도 코너킥을 통한 공격으로 선취점을 올렸다.

28년 만의 월드컵 4강 진출에 성공한 잉글랜드는 이제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보수적인 잉글랜드축구계에서 나타난 괴짜 감독이 이번 대회에서 어디까지 팀을 올려놓을 수 있을지 세계 축구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현우 기자 bas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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