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서윤경] 유리천장 그리고 유리파편 기사의 사진
바람과 비를 몰고 와 피해를 유발하는 태풍의 계절이다. 7호 태풍 쁘라삐룬은 제주 서귀포 동편 해상을 지나 부산 앞바다를 할퀴고 지나간 뒤 지난 4일 오후 6시쯤 생명을 다했다.

2012년 태풍 볼라벤은 유독 강한 바람으로 이색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사람들은 아파트와 상가 건물 유리창에 젖은 신문을 바르고 테이프를 붙였다. 바람으로 유리창이 깨질 경우 파편이 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올 초 대한민국은 강한 바람을 동반한 또 다른 태풍이 불었다. 진짜 태풍이 바람 때문에 유리창이 깨지는 위험천만한 상황을 연출한다면 이 태풍은 유리 천장을 깨기 위한 바람을 몰고 왔다.

지난 7일 서울 혜화역에는 6만명(주최측 추산)의 여성이 모였다. 3주째 계속되는 이 집회는 여성이 피해자인 몰카 사건도 공정하게 수사해 달라며 “여자도 국민”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문재인정부도 유리 천장을 깨기 위해 노력했다. 장관급 여성 비율은 30%를 돌파했다. 정부의 노력에 발맞춰 기업이나 학교, 문화계 등도 장르를 불문하고 유리 천장을 깨기 위한 다양한 시도에 나섰다.

그런데 유리 천장을 깨면서 파편이 이상한 쪽으로 튀어 의도치 않은 피해자도 생겨났다.

지난달 25일 취임 1주년을 맞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기자간담회도 유리 파편이 튀는 현장이었다. 김 장관 역시 30% 중 한 명인 국토부의 첫 여성 장관이었다. 부동산 투기, 남북 철도 연결 등 이슈로 기자들의 질문이 1시간 넘게 이어졌다. 그리고 간담회 말미에 한 기자가 “여성 장관으로서 성과와 계획”을 물었다.

김 장관의 답변은 놀라웠다. 자신이 장관으로 취임하면서 4명이었던 여성 과장이 10명으로 늘었다며 여성 과장의 이름을 하나씩 자랑스럽게 불렀다.

김 장관이 무슨 의도로 얘기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세종청사에서 근무하는 여성 공무원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국토부 직원들이야 직장 상사의 발언을 평가하는 데 조심스러웠지만 다른 부처 여성 공무원들은 목소리를 높여 비판했다. 한 여성 과장은 “실력으로 승진한 게 아니라 장관이 여자라서 승진한 것이냐”며 평가절하된 국토부 여성 과장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그동안 여자 직원들의 노력은 유리 파편에 맞는 순간 폄훼됐다”는 또 다른 공무원의 얘기도 가슴에 와 닿았다. 그리고 아쉬웠다. 김 장관이 여자 직원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제공했다는 말엔 공감하지만 그 전에 유리 파편이 튀지 않도록 젖은 신문지나 테이프를 붙이는 것부터 고민했다면 어땠을까.

서윤경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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