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두 개의 국적

디모데전서 2장 1∼4절

[오늘의 설교] 두 개의 국적 기사의 사진
기독교인에게는 두 개의 국적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육신의 국적이라면, 하나님 나라는 영혼의 국적입니다. 기독교인은 하나님 나라 안에서 생에 받은 구원을 완성합니다. 구원이 완성된 순간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매 순간 기도하고 감사하는 습관은 그래서 필요합니다.(1절) 기독교인이 가지는 가장 큰 기쁨이 삶의 마지막 순간 영광의 면류관을 받는 일인 이유입니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발 딛고 살아가는 나라의 존재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우리의 반면교사입니다. 이스라엘은 한때 세계 최고의 부를 자랑하며 번영을 누렸지만, 하나님을 잊은 뒤에는 이웃 강대국들에 나라를 빼앗겼습니다. 거듭된 환란 속에 백성들은 바벨론 강가에서 하염없이 울며 전 세계를 떠돌았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지 않는 이들이 몸의 나라를 제대로 위하기 어렵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반복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라도 내 몸이 살고 있는 공동체를 튼튼히 하는 것부터 고민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2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유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대한민국에는 임금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높은 주권자인 국민과 국가공동체를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이는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갈5:13)는 말씀과도 이어집니다.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는 서로 의지해야 합니다.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나라의 국민에게는 지켜야 할 의무와 권리가 동시에 존재합니다. 헌법 39조 1항에 명시된 국방의 의무는 그중 하나입니다. 대한민국의 안전을 대한민국 국민이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3절)

2020년부터 대체복무를 허용해야 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그래서 안타깝습니다. ‘양심에 따라 공동체를 지키지 않겠다’는 선언은 공동체를 지키지 않겠다는 다짐과 다를 바 없습니다. 몸의 요구대로 순종하고 산다면 그 사람은 영혼의 때를 하나님으로부터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종교적 양심 때문에 병역을 거부한다지만 결코 하나님 나라가 원하는 결정이 아닙니다. 누군가 버린 짐은 다른 사람이 짊어지게 됩니다. 공동체의 유지가 어려워집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인간은 누구나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몸의 욕구에만 충실한 것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 된 행동이 아닙니다. 공동체의 존립을 위한 최소한의 몫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행동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반복할 뿐입니다. 의무는 국가공동체의 평화롭고 경건한 삶을 위해 함께 치러야 하는 값입니다.

국방의 의무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과 내 것을 구별해 납세의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교육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짧은 시간을 지내고 사라질 육체의 삶보다 영원할 영혼의 삶을 위해 하나님이 뜻하는 대로 일해야 합니다. 영혼이 안식을 누릴 때를 위해 충성하는 마음으로 채워야 합니다. 그 순간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알게 됩니다.(4절) 하나님의 뜻과 가까워지는 나라가 됩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는 말씀처럼 영광의 순간은 죄와 싸워 이겨 어두운 곳의 권세가 세상을 지배하지 못할 때 시작됩니다. 하나님 나라를 지키는 것은 동시에 내 몸의 나라를 지키는 것과 연결됩니다. 총만 잡는 것이 아니라 내 몫의 권리와 의무를 다할 때 하나님 나라도, 몸의 나라도 강건해집니다. 두 개의 국적을 가진 축복받은 여러분, 믿음의 삶으로 영원히 이어질 날 앞에서 영광의 면류관을 쓰고 왕의 상속자로 영원히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김성주 안산 한별교회 목사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