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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세은의 씨네-레마] 우리 뒷모습을 비추는 것들

[임세은의 씨네-레마] 우리 뒷모습을 비추는 것들 기사의 사진
하나 그리고 둘 (A One And A Two,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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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진실에 가까운 영화를 보면 삶을 더 잘 이해하게 될까. 우리 앞에 펼쳐진 생은 온갖 것을 펼쳐놓은 만물상 같은 풍경이다. 선과 악이 뒤섞여 있고, 아름다운 것과 못난 것, 추한 것이 공존한다. 고단하고 때론 잔인한 삶을 그 자체로 어떻게 인정할 수 있을까. 그게 아니라면, 내 기준에 맞는 마땅히 그러해야 할 삶이 있다고 주장해야 할까.

18년 만에 재개봉된 영화 ‘하나 그리고 둘’(포스터)은 후 샤오시엔과 함께 대만의 새 물결을 이끌었던 대만 감독 에드워드 양의 마지막 작품이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 등 세계영화사에 길이 남을 영화를 만든 양 감독은 대만 현대사와 개인의 삶을 아우르는 시선으로 미시적 일상에 섬세한 정감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영화를 만들어 왔다. ‘하나 그리고 둘’의 중국어 제목은 ‘하나 하나(Yi yi)’다. 한자로 쓰는 것처럼 하나와 하나가 모여 둘이 되는 모양이다. 하나에 다시 새로운 하나를 그려가듯 에드워드 양은 가정 내 구성원 각각의 모습을 개별적으로 접근한다. 그들은 자기 앞의 생을 각자 살아간다. 중년의 아버지 NJ와 어머니 밍밍, 고등학생 딸 틴틴, 그리고 8살 아들 양양은 생 앞에 던져진 문제로 골몰한다.

영화는 결혼식으로 시작해서 장례식으로 끝난다. 인생의 순환을 관조하고 전혀 다른 것들을 연결한다. 기쁨으로 가득해야 할 결혼식장 한쪽에 시끌벅적하고 요란한 다툼 소리가 들리고, 정갈하게 예복을 입고 찍은 기념사진 이면에는 희로애락이 배어있다. 에드워드 양은 “(대만의) 결혼식은 재수가 좋은 날을 선택하고, 붉은 것을 많이 장식해 떠들썩하게 진행하지만, 현실에는 그렇게 행복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한편으로 장례식은 슬픈 것이라고 하지만, 조용하게 마음을 다지는 장소이기도 하다”라고 말한다.

일본 감독 오즈 야스지로의 유작 ‘꽁치의 맛’에 이런 장면이 있다. 딸 결혼식을 치른 후 홀로 남은 친정아버지는 평소 잘 가던 술집에 들른다. 검은 예복을 입은 그를 보고 가게 주인이 장례식에 다녀왔는지 묻자 아버지는 “그 비슷한 것”이라고 대답한다.

예리한 관찰자이자 철학자인 꼬마 양양은 아버지에게 말한다.

“난 아빠가 보는 걸 못 보고 내가 보는 건 아빠가 못 보잖아요. 아빠가 보는 걸 어떻게 내가 볼 수 있죠? 진실의 절반을 어떻게 볼 수 있죠? 우리는 앞에 있는 것만 보고 뒤에 있으면 못 보잖아요. 그러니 진실의 반만 보는 거죠.”

꼬마 양양은 진실의 반쪽을 어떻게 볼 수 있는지 묻고 아버지는 카메라가 그걸 볼 수 있게 해준다고 답한다. 그렇게 양양은 카메라를 들고 사람들의 뒷모습을 찍기 시작한다. 우리는 어떤 시선으로 타인의 뒷모습을 바라볼까. 꼬마 양양처럼 영화의 시선도 인물과 거리를 두고 그들의 움직임을 따라간다. 인물의 뒤를 쫓아가는 느리고 긴 카메라 시선은 에드워드 양 감독이 인간과 삶을 바라보는 태도다.

양양은 돌아가신 할머니의 영정 앞에서 “사람들이 모르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고백한다. 지금은 할머니가 가는 곳을 알 순 없지만 나중에 알게 되면 그들을 데려가도 되는지를 묻는다. 꼬마 양양의 고백은 사도 바울이 쓴 ‘고린도전서’의 말씀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 우리가 지금은 거울을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 13:9∼12)

우리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다. 서로의 모습을 담아주는 카메라다. 부분적으로만 볼 수 있는 우리는 꼬마 양양의 소원처럼 서로를 잘 보도록 비춰야 한다. 그날이 올 때까지 진정으로 누군가의 뒷모습을 아름답게 바라봐야 한다.

<임세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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