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유명순] ‘파괴적’ 병원 조직 문화 극복을 위한 ‘파괴적’ 해법 기사의 사진
기업 경영의 ‘파괴적 혁신론’을 제시한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하버드대 교수가 의료산업에 대해 쓴 ‘파괴적 의료혁신’은 한동안 국내 병원 경영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런데 책 제목에 나온 영어 단어 ‘disruptive’는 역설적으로 전공의 폭행이나 신입 간호사 ‘태움’과 같은 대한민국 의료조직 구성원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암초로 나타났다. 혁신이 아니라 의료와 의료조직을 파괴하는(disruptive) 조직 행동이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현재 보건 당국과 관련자 단체들은 인력정책을 문제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 같다. 동의하지만 미흡하다. 햇빛이 아무리 강해도 낙엽 위에 빛을 모아 굴절시키는 돋보기가 없다면 태움은 일어나지 않는다. 병원의 경영 철학과 조직 문화는 조직 행동의 어두운 이면을 설명하는 거점, 즉 돋보기인 셈인데 이 부분이 간과되고 있다.

보건의료 조직 내 파괴적 행위에는 공통점이 있다. 첫째, 위계가 낮거나 수련 중인 신입자에게 자행된다. 신참이면서 여성일 경우 표적 가능성은 더 커진다. 둘째, 파괴적 행위는 개인은 물론 조직에 부정적 파급효과(ripple effect)를 미친다. 파괴적 행위가 묵인돼 만연하면 침묵이 팀원의 능동성과 창의성을 억누르고 조직을 지배한다. 환자 안전이 최우선인 의료조직에서 의료인의 침묵은 중대한 위협이다. 날아오는 주먹과 차트 앞에서, 모욕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실수를 보고하고 팀의 문제들을 먼저 밝히는 ‘용감한 바보’가 어디 있겠는가.

무엇이 파괴적인 해결책일 수 있을까. 경영자에게 가장 두려운 일은 고객의 신망을 잃는 것이다. 병원도 예외일 수 없다. 그간 우리 국민은 명의와 병원의 외양을 쫓으며 충성 고객의 경향성을 띠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나와 가족을 돌보는 청년 간호사·의사가 폭언과 폭행으로 침묵 문화에 매몰돼 있고, 이런 파괴적 행위가 묵인의 대물림을 거듭하면서 환자 안전과 의료의 질을 저하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갑질 기업주에 대한 조직원들의 저항과 불매운동이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이런 점에서 해법은 병원 경영과 조직 문화가 달라지지 않으면 안 되게끔 의료 소비자가 압력을 행사하는 것일 수 있다.

우선 병원에서 자행되는 파괴적 행위를 가늠할 체계적인 증거가 필요하다. 전공의 폭행과 신입 간호사 태움이 별개 문제나 특정 병원 문제일 수 없다는 사회적 공감대의 확산이 필요하다. 상급 종합병원은 진료와 더불어 교육 기능을 갖기에, 수련 의사와 신입 간호사가 다수인 이들 조직 내 존재할 ‘침묵의 나선형’을 끊어내는 데 앞장설 책무가 있음을 강조할 필요도 있다. 무엇보다도 지금까지의 병원 조직 문화를 매우 낯설게 만들 강력한 노력이 필요하다. 국내외 사례를 참고해 조직 행동의 ‘품격 학교 (quality academy)’를 개설하고 인격을 해치는 행위 기준을 공유하며 행동 강령을 학습하는 것이다. 이때 기준과 내용은 반드시 외부인을 포함시켜 마련해야 한다. 태움이나 폭언·폭행은 병원 조직 문화의 통사(通史)로, 뿌리가 매우 깊고 길다. 이러한 노력들이 신규 간호사 적응교육 기간 보장, 전공의 수련 안전 보장 같은 정책과 병행되면서 낱낱이 국민에게 알려져야 한다. 이래야만 국민은 의료 서비스의 현실을 투명하게 알게 되고 의료 소비자로서 더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될 것이다. 그 투명성 아래 태움과 난폭한 조직 문화가 발붙일 곳은 없다.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