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새 교육과정 현장을 가다] 역사적 사건·인물에 학생의 감정 이입하도록 유도

<상> 수업 혁신 중인 중3 교실에 가보니

[새 교육과정 현장을 가다] 역사적 사건·인물에 학생의 감정 이입하도록 유도 기사의 사진
울산시 신언중학교 역사 교사인 임태규 교사(가운데)가 지난 4일 학생 사이를 오가며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학생들은 토론하다 궁금한 점이 생기면 수시로 임 교사를 불러 질문했다.

이전이미지다음이미지

올해부터 2015년에 개정된 교육과정이 학교 현장에 본격적으로 적용됐다. 새 교육과정은 문·이과 통합을 시도하고 있다. 아울러 학생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수업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가르치는 지식의 양을 줄이도록 했다. 의무적으로 외우고 이해해야 할 분량이 많으면 학교 현장에서 토론식 수업이 착근하기 어렵다는 교육계의 판단이 교육과정에 녹아 있다. 새 교육과정은 학교 현장에 안착할 수 있을까. 한 학기 동안 새 교육과정을 적용해본 중학교와 고등학교들을 다녀왔다.

역사 교사 임태규(33)씨는 헤드셋 마이크를 쓰고 네댓 명씩 무리지어 앉은 학생 사이를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교실은 학생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와 임 교사의 마이크 소리로 범벅이 돼 있었다. 심각한 얼굴로 토론을 하는 아이가 있었고 누군가의 장난에 폭소가 터진 학생도 있었다. 학생들은 다가가 말을 붙이기 전까지 교사를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임 교사는 “마이크를 쓸 수밖에 없죠. 소란스럽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토론에 몰입하면 아이들은 교사 말이 잘 들리지 않을 때도 있어요”라고 했다. 지난 4일 찾은 울산시 울주군 신언중학교 3학년 역사 교실은 이런 모습이었다.

“벌써 택시를 운영한 지 1년이 흘렀다. 택시를 운전하는 도중 나는 펑하는 소리를 듣고 놀랐다. 그 폭음 때문에 무서워 일을 쉬고 집에 돌아왔다. 신문을 보니 시위하는 시민들을 보고 그것을 폭동이라고 몰고 진압한다고 했다. 우리를 지켜야 할 군인이 우리를 해치고 있다.”

이날 수업에서 한 여학생이 포스트잇에 작성한 가상(假想) 일기의 한 부분이다. ‘자유민주주의의 시련과 발전’이란 단원을 공부하는 다섯 번째 수업 시간이었다. 첫 수업은 교과서를 읽고 두 번째는 학습지를 풀었다. 세 번째와 네 번째는 영상물을 보고 자료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수업에서 역사 일기 형식의 스토리보드를 만들었다.

스토리보드 작업은 교사가 준비한 사진 20여장을 나눠주는 것으로 시작됐다 6·25전쟁 피란 행렬부터 4·19혁명, 10월 유신, 10·26 사태,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모습이 담긴, 가볍지 않은 사진들이었다. 각 모둠에는 역사적 사건 발생 당시 생존한 가상 인물을 설정하고 일기를 쓰는 과제가 주어졌다. 예를 들어 6·25전쟁 때 태어난 1950년생이 청년 시절 10·26 사태와 12·12쿠데타, 5·18 광주민주화운동, 87년 6월 항쟁 등을 겪은 뒤 일기를 쓰는 방식이다. 포스트잇에 일기의 내용을 채우고 바로 옆에는 해당 사진을 붙이면 된다.

단순해 보여도 상당한 지식이 요구되는 활동이다. 제한 시간은 40분 남짓. 학생들은 교과서와 각종 자료를 펼쳐 놓고 사진에 담긴 역사적 사건에 대한 정보를 탐색해야 했다. 어떤 인물을 설정할지, 어떤 사진을 고를지 등을 토론한 뒤 역할을 나누는 작업을 매끄럽게 처리했다.

임 교사는 “일기 형식이니까 (포스트잇) 윗부분에 연도와 날짜를 쓰면 좋겠다” “(일기라서) 1인칭 시점에서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는데 어렸을 때는 이런 사건이 있었는데 커서도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방식이면 어떨까” 등의 주문을 이어갔다. 내용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한 모둠은 택시기사의 시각으로 6·25전쟁과 10월 유신,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을 바라본 스토리보드를 만들었다. 6·25전쟁 시기는 택시 운전을 시작하기 전인 어릴 때다. “큰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 아빠는 신발도 신지 않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새벽인지 밤인지 어두워서 앞이 보이지 않았다. 펑펑 소리가 나 하늘을 보니 불꽃놀이를 하는 듯했다. (피란 가느라) 너무 많이 걸어서 그런지 다리가 아파왔다”며 급박했던 당시 상황을 상상했다.

다른 모둠은 ‘대한민국의 눈물’이란 제목으로 김주열 열사 사망과 4·19혁명, 베트남전 참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엮어 스토리보드를 만들었다. 김 열사의 단짝 친구가 작성한 일기 형식이다. 일기에 “주열이는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떠올랐다. 참혹했다. 주열아 미안해”라고 쓰고 태극기로 덮인 시신 사진을 붙였다.

수업이 끝나고 완성된 작품은 임 교사가 복도와 교실 등에 전시하기 위해 걷어갔다. 임 교사는 “민주화 운동과 관련해서 수많은 사건이 있었는데 이를 시간 순으로 나열하고 암기하는 방식에서 탈피했다”며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 감정을 이입해 보도록 수업을 설계했다. 자유로운 일기 형식이므로 글에 감정을 표출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역사자료 분석과 해석, 역사 정보 활용, 의사소통, 상호 존중을 기르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 김지훈 울산 신언중학교 연구부장 “공교육 혁신은 교사 간 협력에 달려 있다”

울산 신언중학교 김지훈(40·사진) 연구부장은 새 교육과정 안착과 수업 혁신을 위해서는 교사 간 협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교육의 질은 교사 협력의 질을 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교육 당국이 공교육 혁신을 원한다면 교사들이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시스템, 나아가 그러한 학교 문화를 조성하는데 포커스를 맞추고 지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난 4일 오후 진행된 3학년 역사 수업을 함께 지켜본 뒤 김 교사를 인터뷰했다.

-새 교육과정이 들어서고 한 학기가 거의 끝나가고 있다. 토론형 수업의 좋은 점은.

“역사 수업에서 봤겠지만 한 모둠 안에서도 주도적인 학생이 있고 소극적인 학생이 있다. 소극적인 아이들은 예전의 딱딱한 주입식 역사 수업이었다면 엎드려 자거나 딴 짓을 했을 것이다. 학생 주도형 수업에선 자는 아이들이 없다. 역사에 흥미가 없더라도 활동을 통해 뭐라도 하나 건져간다. 학생 개인의 흥미와 적성을 파악하기 쉽다. 역사 수업에서 소극적이었다가 다른 시간에 적극적으로 돌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학생이 잠재력을 발현시키는 지점은 제각각이다.”

-새 교육과정에 아쉬운 점은 무엇인가.

“정부가 국가교육과정을 만들면 시도교육청이 받아 교육과정을 다시 편성한다. 이를 교사가 받아 해석한 뒤 수업을 기획하게 된다. 국가가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측면에선 필요하지만 교사의 창의성이나 상상력을 제약하는 부분이 존재한다. 교육과정에서 제시한 부분을 꼭 가르쳐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 국가교육과정은 어떤 부분을 어떻게 가르칠지 큰 틀에서만 제시하고 나머지는 교사에게 맡겼으면 좋겠다.”

-어려운 점은.

“교육은 교사의 질을 뛰어넘기 어렵다는 말이 있다. 요즘엔 좀 다르다. 교육의 질은 교사 간 협력의 질을 넘기 어렵다고 해야 맞다. 새 교육과정 도입으로 수업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나 생활지도, 진로지도에서도 교사들이 머리를 맞대는 게 중요해졌다. 예컨대 협력의 질이 뛰어나면 학생을 다양한 각도에서 파악하는 게 가능해진다. 학생 적성에 따라 수학 교사와 국어교사, 음악 교사의 판단은 천차만별일 수 있다. 학교 관리자나 교육 당국이 강요해 봐야 형식적으로 흐르기 쉽다. 교사들의 자발적인 협력을 이끌어 내야 한다.”

-신언중은 협력 문화를 어떻게 만들고 있는가.

“새로 선생님이 오시면 처음엔 힘들어하신다(웃음). 2015 개정 교육과정을 선제적으로 도입 운영한 연구학교이면서 학생이 수업 시간마다 이동하는 교과교실제를 시행하고 있는 학교라서 그럴 것이다. 자유학기제 연구학교도 했었다. 협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일단 교사탐구 공동체가 7∼8개 돌아가고 있다. 또한 교장·교감 선생님을 뺀 교사 32명 전원이 ‘사통팔달’의 멤버다. 사통팔달은 교육과정·평가·수업·인성 4가지 연구 그룹에 ‘달인’인 교사 8명씩 참여하고 있다는 의미다.”

울산=글·사진 이도경 기자yido@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