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이 11일 대통령 2명을 배출한 여의도 당사의 현판을 내렸다. 최소한의 살림살이만 꾸려 조촐한 영등포 당사로 이전했다. 한국 정치의 무대인 여의도에서 사실상 쫓겨난 것이다. 같은 날 홍준표 전 대표는 미국으로 떠났다. 돌아와 정치에 복귀하려는 의지를 비쳤지만 과연 그의 시간이 다시 올지 의심스럽다. 아니, 보수 정치의 시대가 언젠간 다시 열릴 거라는 아주 느슨한 전망조차 망설여진다. 보수는 길을 잃었고 한국당은 출구를 찾기는커녕 계파 갈등의 수렁에 빠져 표류하고 있다. 이는 보수를 표방한 정치인의 책임일 뿐 보수란 가치체계는 잘못이 없다. 보수적인 국민이 지금 한국당의 생사 따위에 관심이나 갖고 있을까. 보수의 가치가 사장돼 가는 현실을 안타까워할 뿐이다. 우리 사회의 한 축을 이루는 목소리, 그것이 갖는 견제와 균형의 기능을 포기할 순 없는 노릇이기에 그렇다.

홍 전 대표는 출국 전 한국당을 향해 “더 치열한 노선 투쟁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가 제시했던 노선은 국민의 동의를 얻지 못했지만 노선 투쟁이 보수의 길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는 뜻이라면 이 말은 옳다. 늘 지리멸렬하던 한국당 회의석상에서 마침 김성태 대표권한대행이 보수의 길을 말했다. “수구냉전에 대한 반성 운운은 보수의 자살이자 자해”라는 한 보수논객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김 대행은 “고정불변의 자기 이념에 갇혀 수구냉전적 사고를 고수하는 것이야말로 보수의 자해다. 보수 이념은 고정불변의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변화하고 끊임없이 자기를 혁신하는 것”이라고 했다. 작심한 듯이 “보수 이념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뉴노멀에 맞는 뉴보수가 필요하다” “시대정신에 맞는 보수의 뉴트렌드를 만들겠다” 같은 말을 쏟아내며 “건설적인 노선 투쟁을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그의 주장에 동의한다. 지금 필요한 건 한국당의 재건이 아니라 보수의 역할을 되찾는 일이다. 그 시작은 이 시대 한국 사회에 필요한 보수의 가치를 새롭게 찾아내 국민에게 제시하는 것이 돼야 한다.

보수의 길을 고민하는 정치인이라면 서울대 강원택 교수의 조언에 귀 기울이기를 권한다. 영국 보수당을 연구한 그의 문제의식은 “보수당은 옛 것을 지키는 정당인데 과거에 연연하는 정당이 어떻게 300년씩 지속되며 권력을 잡을 수 있었을까”였다. 강 교수는 보수의 유연함이 그것을 가능케 했다고 본다. 지키려는 신념이 너무 확고해 그것을 위해서라면 어떤 변화든 받아들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보수당은 시대와 사회의 변화가 불가피함을 인정하고 이를 수용하면서 질서 있는 변화를 추구했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가. 그 변화의 흐름 속에서 한국의 보수는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이 질문의 답을 찾아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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