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권기석] 저출산 정책이 효과 못내는 이유 기사의 사진
요즘 정부에서 가장 머리가 아픈 사람은 저출산 대책을 맡고 있는 공무원들일 것 같다. 10여년간 100조원 넘게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출산율은 오르기는커녕 사상 최저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책수단을 총동원한다는 의지를 가지라”고 했지만 나올 수 있는 정책은 대부분 다 나왔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오는 10월 좀 더 근본적인 정책을 내놓는다고 하는데, 이를 맡은 공무원들은 거대한 벽 앞에 서 있는 느낌일 것이다.

한마디로 저출산 극복은 뭘 해도 안 되는 상황이다. 이쯤 되면 더 이상 정책을 만드는 공무원만 탓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숱한 정책에 엄청난 예산을 들였는데도 효과가 나지 않는다면 우리가 처음부터 문제에 잘못 접근한 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아이를 낳는 행위를 정책으로 바꿀 수 있다’는 전제부터 짚어봐야 한다는 얘기다. 정책을 거론하면 혹자는 과거의 성공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다. 1960∼90년대 인구증가 억제정책 말이다. 우리나라 출산율은 1970년 4.5명에서 1995년 1.6명으로 떨어졌다. 이를 두고 정부가 강력한 산아제한 정책을 편 덕분이라는 평가가 많다. 과연 그럴까.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용 차이 교수는 2010년 논문에서 중국 한 자녀 정책의 효과를 분석했다. 중국 장쑤성과 저장성은 산업화나 교육 수준 등 여러 면에서 비슷했지만 한 자녀 정책을 실시하는 방식은 달랐다. 장쑤성은 거의 예외 없이 엄격하게 한 자녀만 낳게 했다. 반면 저장성은 농민인 부부가 딸을 낳을 경우 둘째를 가질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론상으로 장쑤성은 2000년 최대 출산율이 1.06명이 돼야 마땅했고 저장성은 최대 1.47명이어야 했다.

하지만 2000년 인구센서스에서 장쑤성의 출산율은 0.97명을, 저장성은 1.04명을 기록했다. 별 차이가 없었다. 차이 교수는 그 이유를 “사회경제적 발전이 한 자녀 정책보다 출산율에 더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두 지역에서 비슷한 양상으로 진행된 1인당 국내총생산 증가와 여성의 교육 수준 향상, 세계화 등이 출산율 하락에 더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한 자녀 정책 포기 이후에도 출산율 하락이 계속되는 것도 사회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는 인구 정책의 한계를 보여준다.

1960∼90년대 한국에서 산아제한정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진짜 이유는 ‘아이를 덜 낳는 방향으로’ 사회가 변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력한 인구증가 억제정책이 없었더라도 출산율은 저절로 낮아졌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난 10여년간 출산장려 정책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도 밑바닥 사회 구조에 있다. 물질적 풍요 증대와 개인주의의 확산이 결혼과 가족에 관한 가치관을 급속도로 바꾸고 있다. 출산율 감소는 이런 거시적 변화와 맞물려 나타난 것이다. 출산이나 보육, 주거에 대한 직접적, 제한적 지원으로는 변화의 흐름을 돌리기 어렵다.

더욱이 한국은 여성에게 더 많은 의무를 지우는 전통적 가족 문화가 출산율 증가를 막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남성 육아휴직 혜택을 조금 더 늘리는 방식으로는 사회 전반에 깊이 뿌리내린 의식을 하루아침에 바꾸기 힘들다.

정부가 정책 수단으로 인구감소에 대처하고 싶다면 이제는 방향을 달리 해야 한다. 현실을 인정하고 이에 적응할 정책을 짜자는 얘기다. 여기서 ‘정책’은 인구 성장에 맞춰 설계한 여러 제도를 재조직하는 일이다. 남아돌게 될 교수·교사와 학교 시설은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부양할 인구가 부양받는 인구보다 적을 때 국민연금은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 세금수입 감소에 따른 재정 축소는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지 등 말이다. 생산가능 인구가 부족하다면 출산을 통한 공급 말고 이를 채울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런 방향 전환은 몇몇 공무원이 하기는 어렵다. 최고지도자가 인구 정책의 운전대를 틀어야 한다.

권기석 사회부 차장 keys@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