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고세욱] ‘실패자’ 홍명보 일어서라 기사의 사진
‘지장·용장·덕장의 공통분모’ ‘창의적 용병술에 재계도 관심’

6년 전 한국 사회는 한 축구 감독에 열광했다. 그의 리더십을 분석하고 찬양하는 책이 속속 출간됐고 기업 등 각종 기관에서는 초빙 경쟁을 벌였다. 한 저서에서 그는 ‘국위 선양의 화신이자 태극전사의 아이콘이며 멘토 시대의 멘토’라고 묘사됐다. 주인공은 홍명보 대한축구협회 전무다. 선수로서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쓴 뒤 감독으로도 2012 런던올림픽에서 사상 첫 축구 동메달을 따낸 그의 인기는 신드롬을 방불케 했다.

6년이 지난 지금 그에 대한 평가는 180도 바뀌었다. 4년 전 브라질월드컵에서 대표팀이 졸전 끝에 16강 진출에 실패하자 사령탑인 홍 감독은 ‘실패자’로 낙인찍혔다. 찬사를 받은 ‘형님·소통’ 리더십은 ‘의리·패거리’ 리더십으로 둔갑했다. 은둔하다시피 한 그는 지난해 축구협회 전무로 대중 앞에 나타났다. 아픔을 걷어낸 듯했다. 그런데 러시아월드컵 기간 홍 전무는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5일 정몽규 축구협회장의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한 말이 화근이었다. “후배 해설위원들은 어린 나이에 처음 나간 월드컵(한일월드컵) 등에서 성공하며 다른 선수들이 못하는 것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는 것 같다.” “감독을 경험했으면 해설의 깊이가 있었을 것이다.” 축구팬들은 “감독을 맡지 않으면 대표팀에 대해 지적하지 말라는 거냐”며 홍 전무를 ‘꼰대’로 몰아붙였다. 홍명보는 다시 추락했다. 과거 그에 대한 영웅화 못지않게 지금의 비난 일색 분위기도 도가 지나치다. 간담회 발언도 스타 출신 해설위원들의 언행을 비판하며 제기한 기자의 질문에 답한 것일 뿐 의도성은 없었다.

아시안게임 축구 엔트리가 16일 확정됐고 차기 대표팀 감독 선임 작업도 한창이다. 한국 축구의 새판 짜기가 시작됐다. 이런 상황에서 실패자 홍명보의 역할은 한국 축구에 기여할 부분이 적지 않을 수 있다. 스포츠 매니지먼트 전문가 마이클 바엘리는 저서 ‘다르게 뛰기’에서 리더십의 가치 중 하나로 ‘실패와 실수로부터의 교훈’을 꼽았다. 해설위원 발언에 묻혔지만 홍 전무는 간담회에서 국내 유소년 축구가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를 자세히 설명했다. 사석에서 지도자 육성의 어려움, 대형 수비수 부재의 원인, 학원 축구 발전 방안 등에 대해 꾸준히 목소리를 높여 왔다. 그가 승승장구했다면 이런 문제의식이 있었을까. 영웅으로 남았다면 “다른 선수들이 못하는 것에 대한 이해가 떨어진다”는 지적은 홍 전무에게 향했을 수 있다.

영화 ‘승리의 탈출’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포로와 독일 선수 간 축구시합을 다룬다. 포로팀의 실베스터 스탤론은 전반전을 마친 뒤 동료들과 탈출하려 한다. 하지만 펠레는 “지금 도망가면 시합 이상의 것을 잃는다”며 만류했다. 독일 점령하의 프랑스 파리 경기장에서 포로팀을 응원하는 수만 관중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라는 뜻이었다.

대표팀의 쓴맛 단맛을 가장 많이 본 홍 전무는 미우나 고우나 축구계의 자산이다. 그가 이대로 주저앉으면 한국 축구는 그야말로 ‘시합 이상의 것’을 잃을 수 있다. 이 경우 어느 누가 한국 축구를 위해 총대를 멜까. 대표팀의 단기 결과는 외국인 감독에게 맡긴다 하더라도 한국 축구의 체질 개선과 발전은 결국 축구계의 몫이다.

유능한 사람은 실패의 경험을 통해 일어서는 방법을 찾는다. 홍 전무가 고심하는 유소년·학원 축구의 문제점 개선은 한국 축구의 대계를 위한 기초공사일 수 있다. 일각의 의심처럼 홍 전무가 인맥·학맥으로 엮인 축구계에서 안주한다면 자살행위라는 것을 본인은 잘 알 것이다. ‘승리의 탈출’ 결론. 1대 4로 지던 포로팀은 후반에 투혼을 불사르며 4대 4로 만든다. 그리고 경기 종료 후 그라운드에 몰려와 환호하는 관중 틈에서 자연스럽게 탈출에 성공한다. 반전을 이뤄내면 관중의 환호와 이에 따른 보답은 나타나게 마련이다.

고세욱 스포츠레저부장 swk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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