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지역 리포트] 페놀에 놀라고 불신에 덧나고, 30여년간 9건 대구지역 식수 수난사 기사의 사진
지난 11일 대구 달성군 다사읍에 있는 문산정수장 모습. 대구시는 수돗물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이 커지자 매주 3번 월·수·금요일에 문산정수장 등에서 수돗물을 채취·검사해 그 결과를 공개하고 있다. 지난달 대구지역 수돗물의 70%를 생산하는 낙동강 문산·매곡정수장의 물에서 과불화화합물질이 검출됐다는 내용이 보도되면서 대형마트에서 생수 사재기 사태가 벌어지는 등 큰 혼란을 겪었다. 대구=최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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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민 물 공포 어디에서 왔나

17일 대구시 등에 따르면 지난달 낙동강과 대구지역 수돗물에서 유해 물질인 과불화화합물이 검출됐다는 보도가 나간 후 대형마트에서 생수 사재기 사태가 벌어지는 등 큰 혼란을 겪었다. 당시 문제가 된 것은 유해 물질인 과불화헥산술폰산(PFHxS)과 발암 물질인 과불화옥탄산(PFOA)이었다. 대구시와 환경부가 과불화옥탄산은 외국 권고 기준에 훨씬 못 미치는 수치고, 과불화헥산술폰산은 구미공단에서 방출된 것으로 일시적으로 수치가 올라간 적이 있지만 이 수치 역시 호주를 제외하고 다른 나라 권고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수치였다고 해명했지만 대구시민들은 믿지 못했다.

환경당국의 해명에도 공포심을 떨치지 못한 것은 반복된 경험에 기인한다. 대구에서 식수로 인한 난리의 역사는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3월 수돗물에서 악취가 나면서 시민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경북 구미공단의 대기업 산하 A업체에서 페놀 30t이 유출돼 낙동강으로 흘러들었는데 이를 소독하겠다고 염소를 과다하게 뿌려 악취가 심해지고 독성이 더 강해졌다.

페놀은 피부 부식작용을 일으키고 중추신경계에 영향을 주는 것은 물론 다량을 섭취하면 소화관의 염증과 구토, 경련 등을 유발한다. 특히 임산부 등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공포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하지만 사태가 잠잠해진 후 한 달 뒤 같은 업체에서 또 페놀 1.3t이 유출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면서 시민들의 불신은 극에 달했다. 당시 환경처와 대구시 등은 수질자동측정망과 수질연구소를 설치하고 고도정수처리시설을 도입하는 등의 대책을 내놓았지만 신뢰를 회복하지는 못했다.

당시 공무원이었던 김모(56)씨는 “그때는 지금처럼 생수가 보편적인 시절도 아니어서 어린 아이들을 둔 엄마들이 생수를 구한다고 난리가 났다”며 “각종 약수터 등에도 물을 뜨려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섰다”고 회상했다. 업계에서는 페놀 사태를 계기로 생수·정수기 산업이 전환점을 맞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끝나지 않는 낙동강 수질 사고

불행하게도 식수 문제는 페놀 사태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2004년 구미공단과 김천공단 내 업체들에게서 발암물질인 ‘1,4-다이옥산’이 유출됐는데 페놀 사태를 기억하는 시민들은 생수를 사재기하는 등 극도의 공포감을 드러냈다. 당시 환경당국은 다이옥산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설정하고 자체감시항목으로 지정했다.

2006년에는 구미공단 내 대기업 B사에서 LCD판 제조 시 세정·살균제로 사용되는 발암물질인 퍼클로레이트가 유출됐다. 역시 사태 발생 후 이 물질을 자체감시항목으로 설정하고 낙동강 수계 가이드라인을 설정했다.

하지만 2008년에 또 김천공단 내 한 업체에서 화재가 발생해 소방수와 함께 페놀이 유출돼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사고가 발생했다. 5시간 가까이 두류·매곡취수장 취수가 중단됐다. 2009년에도 구미공단과 김천공단에서 처리되지 않은 ‘1,4-다이옥산’이 낙동강으로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2012년과 2013년에는 구미공단 쪽에서 불산 유출사고가 발생하면서 일부가 낙동강으로 유입됐다.

이처럼 낙동강 수질오염 사고가 끊이지 않자 2009년부터 대구 취수원을 구미공단 상류로 이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대구시가 취수원 이전을 추진하게 됐다. 4대강 사업도 낙동강 수질 오염 논란을 일으켰다. 이명박정부에서 실시한 4대강 사업 후 낙동강에서 매년 녹조가 발생해 문제가 됐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식 대처가 불신 키워

일련의 낙동강 수질 오염 사태에서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일이 터진 뒤에야 대책을 마련한다고 한바탕 난리를 치른다는 것이다.

민경석 경북대학교 환경공학과 명예교수는 환경당국과 지방자치단체에 수질을 관리하는 시스템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한다. 낙동강 인근 공단에서 수많은 유해 물질이 낙동강으로 유입되지만 이를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 없다는 것이다.

민 교수는 “지금까지 발생한 사고들을 보면 문제가 된 뒤 유해물질 항목을 추가하는 식인데 이는 수질 오염에 무방비 상태라고 봐야 된다”며 “기업들은 세정제 등으로 사용한 물질이 문제가 돼 규제 항목에 추가되면 항목에 없는 물질을 찾아 사용할 것인데 환경 당국은 이를 감시하고 규제할 대책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앞서 정부가 유해 물질을 유통단계부터 관리하겠다고 했지만 기업의 입장 등을 고려하면서 처음 취지에서 많이 물러났다”며 “선진국처럼 기업에서 사용하는 물질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규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 교수는 녹조 문제에 대해서도 “중장기 계획이 되더라도 로드맵을 제시해야 하는데 그동안 정부는 뾰족한 대책이 없었다”며 “물관리 일원화가 시작된 만큼 우리 정부도 수질에 대한 명확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구=최일영 기자 mc10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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