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손수호] 축구공은 국경을 넘고… 기사의 사진
월드컵을 보면서 새삼 느낀 것은 선수들의 실력만큼이나 다채로운 국적이었다. 유명 선수들이 유럽의 명문클럽에서 뛰다가 러시아에서는 조국의 국기를 달고 나왔다. 흥미롭고도 생소했다. 결승전은 국가의 의미를 더욱 되새기게 했다. 음바페, 포그바, 캉테…. 이름부터 아프리카 토속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프랑스 선수들이다. 전체 선수 23명 중 21명이 이민자 출신이고, 15명이 흑인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음바페는 AS모나코, 포그바는 맨유에서 뛰었다. 축구공 앞에서 국가나 국적은 깃털처럼 가벼운 것이다.

세기의 스타 호날두의 정체성은 이베리아 반도를 넘나든다. 챔피언스 리그에서 레알 마드리드 선수로 뛰다가 유로와 월드컵에서는 포르투갈 주장을 맡는다. 이번에는 월드컵의 함성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이탈리아 유벤투스 유니폼을 입었다. “세리에A 트로피를 위해 싸울 것이다.” 그가 스페인전에서 세 골을 넣고 포효하는 모습에서 개인의 공명심과 애국심을 함께 보았다. 메시가 아르헨티나의 8강행 좌절에 낙담하는 장면도 유사하다.

유럽에서는 근대국가 성립 이후 국경의 의미가 희미하다. 호날두가 비행하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대립과 협력의 역사만큼 많은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 지금은 스페인의 아스팔트길이 끝나는 지점에 포르투갈의 시멘트길이 이어지는 평화의 국경을 나누고 있다. 벨기에와 네덜란드는 십자가가 표시된 바닥이 있고, 양쪽에 ‘NL’과 ‘B’라는 글씨를 적어 놓는 정도다. 두 나라와 독일이 닿는 지역에는 세 나라의 깃발이 꽂힌 원형 공간에 표석 하나만 무심히 놓여 있다. 슬로바키아와 우크라이나는 콘크리트 말뚝 몇 개를 박아 놓았다. 유럽은 아니지만 8강전에서 맞붙은 브라질과 우루과이는 주차장의 중앙분리대를 나누는 국경선이 있다.

긴장 속에 유지되는 국경도 있다. 미국의 경우 북쪽 캐나다와는 농작물을 경계로 삼을 만큼 관대하면서도 남쪽 멕시코에는 월경을 막겠다며 높은 장벽을 쌓고 있다. 쇼맨십 강한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퍼포먼스가 아니라면 분명한 역사의 퇴행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국경에는 수시로 화염이 뿜는다. 시리아나 예멘처럼 내전 중인 나라는 경계가 불분명하다는 사실 자체가 공포스럽다.

시선을 안으로 돌리면 철조망의 휴전선을 만나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삼엄한 공간일 것이다. 누구든 허가 없이 선을 넘을 수 없고, 넘고자 하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북한 군인의 귀순 영상에서 보았듯 탈출자와 추격자는 군사분계선에서 운명이 좌우된다. 국군이 총상으로 신음하는 북한 병사를 데려올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정전협정으로 약속한 경계의 힘이 작동되고 있었기 때문이 다.

국경의 개방이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꼭 10년 전인 2008년 7월, 금강산 해안을 산책하던 관광객이 군사경계지역을 침범했다는 이유로 북한군의 총격을 받아 숨졌다. 정주영 회장의 1001마리 소떼가 열어젖힌 국경은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금방 닫히고 말았다. 지금 남과 북의 대표단, 미국의 국무장관, 체육선수가 판문점과 하늘을 통해 수시로 넘나들지만 국민들에게 국경은 완고하다. 분단의 최대 희생자인 이산가족은 아직도 먼 길을 돌고 돌아 겨우 금강산에서 만난다.

최근 제주도에 상륙한 예멘인이 국경과 국적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시험하고 있다.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해 놓고도 막상 난민이 밀려들자 이 ‘초대받지 않은 손님’에 대한 생각이 흔들리고 있다. 엄정한 법의 질서를 따르겠지만 유념할 것은 아무리 이방인이라고 해도 낯선 땅을 찾아든 사람에 대해 기본적인 연민과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좀 불편해도 한국 문화의 포용력을 믿고 싶다. 인종이 섞일수록 문화는 풍성해진다. 그것이 월드컵에서 만난 프랑스 국가대표팀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손수호 객원논설위원 (인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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