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에서] 자기반성이 먼저다 기사의 사진
주 52시간 근로제가 벌써 3주째 덜컹거리며 굴러가는 중이다. 어설프고 어수선하게 시작한지라 아직도 현장에선 혼란스럽다. 근로자들의 활동을 놓고 ‘근로시간이다’ ‘아니다’ 설왕설래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달 단속·처벌 6개월 유예로 보완해 시행한 게 그나마 혼란을 줄이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당초 3개월 유예를 밀어붙이듯이 시행했다면 이 여름휴가철 폭염 속 기업과 근로자들을 더 부글부글 끓게 했을 것이다.

문재인정부의 주요 노동정책은 주 52시간 근로제와 최저임금 인상이다.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가 제 역할을 다하는지는 의문이다. 특히 주 52시간 근로제와 관련해선 적나라했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예정대로 실시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했다가 시행한 뒤 문제가 발생하면 보완한다고 했다. 현장에서의 혼란과 불만이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는 질타가 이어지자 뒤늦게 허겁지겁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발표했다. 재계는 여전히 미흡하다는 입장이고, 노동계도 근로시간 단축효과를 사실상 상실시키는 조치라고 반발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일 몸살을 앓은 뒤 업무에 복귀해 주 52시간 근로제 후속대책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다. 과로사회에서 벗어나자는 긍정적인 취지를 빠른 속도로 체감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주문했다.

최저임금위원회의 내년도 최저임금 10.9% 인상안에 대해서도 경영계와 노동계 모두 불만스러워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도 고용노동부의 역할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 9명은 고용노동부 장관이 제청하고 대통령이 위촉한다. 해마다 경영계 추천 사용자위원들(9명)과 노동계 추천 근로자위원들(9명)이 대립할 경우 공익위원들이 인상률 등을 결정하게 되고, 대체로 정부의 뜻을 반영한다. 위원회에 재심의를 요청하는 권한도 고용노동부가 갖고 있어 최저임금과 관련한 고용노동부의 역할은 기실 크다.

문 대통령은 16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실현’ 대선공약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해 국민에게 사과했다. 이어 소상공인과 영세 자영업자들을 지원하는 보완책을 주문했다.

노동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정부여당 안에서 여과나 조율이 매끄럽지 않고 국민들에게 노출되는 것은 결코 정상은 아니다. 정책 시행 과정이 패턴화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고용노동부가 좀 더 주도적으로 책임 있게 역할을 자임해야 한다. 그러려면 과거 잘못을 반성하는 게 먼저가 아닐까. 지난 정권에서 재계를 편들어 노조파괴 공작을 획책하는 등 노동계를 탄압했다. 검찰수사 중인 사안에 대한 언급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해 침묵할 수 있다. 하지만 중대한 사안이다. 책임을 통감하고 반성한다면 고용노동부 수장인 장관이 노동계와 국민에게 사과하는 게 적절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조직의 자기 확신성을 갖기 어려워 보인다.

최근 정부 정책들이 속도조절 형태로 경착륙하는 상황들이 잇따른다. 계획보다 속도를 다소 늦추더라도 견실하게 제도를 정착시키는 게 훨씬 낫다. 논어(論語) 자로(子路)편에 욕속부달(欲速不達)이란 말이 있다. 일을 너무 빨리 하려다가 오히려 잘 안 되는 경우가 있음을 경계한 공자(孔子)의 말씀이다.

김용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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